선화동 교보빌딩 옆 지하에 있다가 몇 개월 못 있고 1997년 1월 새해에 컬트에 오신 이석호 사장님께서 가게를 정리하고 완전히 대전을 떠나 천안으로 가신다고 했을 때 가장 고민이 되었습니다. 우리 컬트도 빠지고 세를 주었던 옆의 커피숍 겸 호프집도 빼기로 했습니다. 원래 지하를 통으로 전세 내셔서 반으로 그 나눈 공간이었거든요. 가을에 제가 전담하여 운영을 맡은 관리자로 들어왔을 때는 시사실이 있다는 컬트를 운영한다는 자부심과 자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고 이제 새로운 공간을 빌려 독립을 해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 것입니다. 1997년 1월 초 신정 연휴에 그 이야기를 들어서 새해 벽두부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당장 짐을 뺄 곳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지방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시네마테크 연합을 위한 준비 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 후 당장 짐을 뺄 곳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근데 1월 21일 차가웠던 화요일 오후 어떤 전화를 받게 됩니다. 컬트를 신문에서 봤는데 뭐 하는 곳이냐고 하더라고요. 말투가 품위가 있었습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심이 있는 분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래 저래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이제 이런 좋은 공간도 비워줘야 하고 나가야 한다고 걱정을 또 흘렸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그분이 자기가 작은 5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5층이 20평짜리가 비었는데 거기가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광명이 비추는 순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심봤다 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때 쓰던 공간이 13평 정도였는데 20평 공간을 그것도 무상으로 빌려준다니...
대전 컬트 오픈 영화제(1996.06~07)포스터
사무실에서 새벽 3시까지 못 본 비디오 영화를 보고 집에 갔습니다. 잠을 조금 잤지만 눈이 떠졌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대흥동 지하 컬트까지는 빨리 걸으면 20~30분 거리입니다. 귀인이 찾아와서 도움을 준다니 아니 흥분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틀 후 목요일 저녁에 56세의 이선주 님이라는 분이 다시 왔습니다. 마침 회계를 봐주던 총무님도 계셔서 같이 손님을 맞았습니다. 총무를 불러 이야기를 하니 총무도 반색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귀인 이 사장님께서 로카르노 영화제 그랑프리에 빛나는 독립영화감독인 배용균 감독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글마도 내 아우요. 내가 도와줘서 알지"아니 그렇게 발도 넓으시다니. 그럼 우리랑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거라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우리는 옆 호프집에서 맥주와 오징어를 가져왔습니다. "사장님 여기 목 좀 축이시지요. 저기 총무님 여기 사장님 한잔 따라주세요" "아이 괜찮은데.... 자 고마워요, 우리 황 대표도 한잔 해요 자... 이 총무도 " "아, 네 감사합니다." 맥주를 몇 병 더 가져왔을 때는 총무가 눈치껏 옆 호프집에서 과일 안주까지 가져왔습니다. 일반인은 모르는 배용균 감독까지 알다니 정말이지 믿을만한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도란도란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결정타가 들어왔습니다. "저기 아우님, 여자 친구 있어요?" "아니 뭐 여자친구는 없는데요..." "내가 딸이 하나 있어요. 외동딸 개가 바이올린을 하는데 우리 컬트 사무실 아래가 연습실이에요. 우리 아우님 보다 어리니까 같이 예술하는 사람이니까 잘 친하게 지내요." "아 저희 누나도 비올라를 전공하는데... 그렇군요. 음악은 잘 모르지만 뭐 그래야죠. 영화는 언제는 무료입니다요" 전 입꼬리가 올라가고 배시시 이게 무슨 횡재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니 무료로 상영공간을 만들 사무실도 생기고 사장님의 어여쁜 음악을 하는 따님과 또 연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습니다. "나중에 우리 사위가 될지도 모르죠 황 대표" 저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덧니가 있어 웃을 때 잘 드러내지 않는 윗니를 다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자 가만 우리 집에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었어요. 내가 외항선을 탔었거든. 그래 거기에 향어를 키우는데 집사호람한테 향어 좀 썰어오라고 해야겠네 안주로 먹게 회 좋아하시나?" "아유 괜찮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전화를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을 직접 바꿔주셨습니다. "여보 여기 어제 말한 그 컬트 대표" "아 예 사모님, 안녕하세요~" 10살 연하라나 그 사모임과 간단히 통화를 했답니다. 이제 이분은 확실하십니다.
"저기 내가 잠깐 집에 휑하니 다녀올 텐데 가만... 내 정신 좀 봐 지갑을 빼놓고 왔어... 택시비가 없네" "자 여기.... 5만 원이면..." 집이 저기 가수원 지나서 논산 가는 방향이라고 하셨다. "아 그러면 가만있자...." 총무에게 눈치를 주었습니다. 씨네 21 모임에서 회원이 된 총무님이 지갑에서 2만 원을 더 꺼내 제게 주고 전 2만 원을 더 건네주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요. 회 떠가지고 올 테니까" 사장님이 나가도 한참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동안을요. 그리고 두 팔을 들었습니다. "야호! 드디어 드디어 이게 웬 떡이냐!!!" 총무님도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풀릴 수가 있나요? 어리벙벙하네요"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시네요. 역시! 휴우~"
한 시간이 금방 흘렀습니다. 30분이면 오신다는 분이 한 시간이 넘어도 안 왔습니다. 할까 말까 하다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차가 펑크가 났나... 총무님은 막차 때문에 가고 2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깜깜무소식에 함흥차사였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제 약점은 너무 사람을 잘 믿는다. 귀가 너무 얇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부인까지 통화했는데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다 시 피했습니다. 옆 가게의 맥주와 안주값은 외상을 했습니다. 회비 5명 5만 원과 총무 개인도 2만 원 외상값 8만 원.... 모두 15만 원의 피해. 금전적인 것보다 사람의 기대를 무너트린 행동. 비행기를 탔다가 추락하는 그 어질어질한 기분. 아니 어떻게 그렇게 깜쪽같이 사람을 속일 수가 있는 거죠? 저는 그 이후로 일주일을 혹시나 해서 더 기다렸답니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정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속담이 딱 맞네요. 불로소득을 기대하면 안 된다. 즉 가만히 앉아서 주어지는 행운은 없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희망고문이라도 당해봤으니 얼마 그냥 잃었다 셈 치고 넘어가야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근데 정말 궁금한 게 이렇게 특수관계(?) 목적을 가지고 접근이 가능할 만큼 그 아저씨 아니 사장님은 머리가 좋으신 건지 제가 좀 어리숙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