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영화세상, 대전 시네마테크 컬트>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극장, 24시간 다양한 유형의 관객들이 숨 쉬는 곳, 바로 PC통신을 통한 영화동호회 방들이다. 80년대 중반 첫 통신문화를 연 천리안을 효시로 92년 하이텔, 94년 나우누리, 96년 유니텔, 최근의 넷츠고 등 여러 통신서비스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 정보의 데이터 베이스 속에는 항상 영화동호회가 자리 잡고 있고 어디서나 가장 환영받고 있는 동호회가 바로 PC통신의 영화동호회일 것이다.
천리안 "영화동호회"는 그 연륜만큼이나 폭넓은 사용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자랑하고 있다. 특색 있는 젊은 영화 동호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한 회원이 젊은 나이에 숨지자, 그를 추모하는 방까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하이텔의 "시네마천국"은 지방의 영화제작모임과 소모임방을 만들어 놓았고 각종 오프라인 모임을 활성화하면서 대중성을 자랑하고 있다. 나우누리 "빛그림시네마"에서는 한글 아이디를 처음 내놓았던 것처럼 많은 젊은 층이 이용하고 있으며 지방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대전충정의 '센티스', 부산경상의 '아이즈', 광주전라의 '포커스'가 제체 통신망을 구축하여 각각의 영화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유니텔은 후발주자지만 인터넷과 연결된 통신동호회라는 차별성을 무기로 영화동호회 역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영화사나 잡지사, 홍보 기획사 등 영화 관련 업체들은 이런 각 PC통신에 자신들의 방을 만들어놓고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통신 영화동호회에 각종 영화, 시사회 정보를 주거나 여론을 모니터링하여 관객을 이끌 수 있는 묘책을 끌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독립영화인들이나 아마추어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이곳을 통해서이다.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서명운동 등의 캠페인과 각종 영화 관련 표절을 비롯한 감시 모시터 기능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즘의 PC통신 영화동호회의 역할이라 하겠다.
이제 PC 통신의 영화동호회는 영화계에서는 여론의 창구로서 또 다른 영상문화의 창조자로서 인정을 받고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365일 24시간 누군가에 의해 켜져 있는 PC통신의 영화동호회들은 기층 영상문화의 대중화와 비판적, 대안적인 영상문화의 선도자로서 역할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그들이 깨어있는 한 영화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욕구가 우리의 영상문화를 건강하고 다양하게 만들 것이다.
글. 황규석 / 대전 시네마떼끄 대표 - 문화예술정보 net 1999년 3월 1일 발행
옛날부터 영화판 그러니까 극장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들의 1950, 60년대는 먹고
살기 어려웠던 때라 떼돈을 벌었던 극장 주위에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
지 들끓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극장에서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주위에 진을 치는 사람들
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있다면 단지 영화가 좋아서 일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부터 현재까지 극장가 그것도 극장가의 문패라 할 수 있는 영화 간판을 멋지게 꾸미고 있는
박치덕(아카데미) 극장 미술부장을 만나본다. 눈가의 잔주름만큼이나 이쪽 대전지역의 극장가에서는 잔뼈가
굵은 우리 시대의 장인의 체취가 편안한 그의 웃음에서 배어 나왔다. 그는 대전에서 나서 줄곧 생활하였고 영
화판에서 줄곧 생활한 오리지널 대전 토박이이다. 한편 놀라운 것은 아카데미 극장에서 지난 1966년부터 그
러니까 33년 동안이나 붓으로 극장의 간판만을 그려온 외길 인생이었다는 점이다.
한 직장에서 그것도 이동이 심한 극장가에서 33년씩이나 같은 일을 하였다니 아카데미 극장의 터줏대감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 극장 지하 주차장 한쪽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순간에 마침 그는 다음
개봉 예정작인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8mm>라는 작품의 작업을 위한 기초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황 : 어떤 배우가 그리기 편한가?
박 : 예전 배우 중에는 김지미, 지금은 한석규가 참 좋은 틀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윤곽이 뚜렷한 사
람들이 이미지가 강하듯이 윤곽이 뚜렷해야 그리기 편하다. 결코 얼굴이 매끈하고 이쁜 배우가 그리기 쉬운
얼굴은 아니다.
황 : 보통 얼마나 많은 배우들의 얼굴이 그의 붓을 통해서 탄생하나? 때론 슬프게,
때론 아련하게 그리고 때로는 박력 있게....
박 : 지금은 일 년에 50-60개 정도의 간판을 그린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사실상 미술이나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고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황 : 요즘에는 간판을 단숨에 컴퓨터로 뽑아서 극장에 걸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박 : 아무래도 보기에 딱, 극장이다라는 운치나 풍경은 수작업을 못 따라오는 것 같다.
황 : 자신도 계속 그림을 그려야 감(感)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지 않나?
박 : 천직으로 알고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천직으로 믿고 하는 일이 아무 조건
없이 지켜나갈 수 있는 거 같다.
간단한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극장다운 분위기를 꾸며주는 것은 인간적인 냄새와 물감냄새가 일구어낸 영화 간판이 아닌가라는 그의 말을 상기해 본다. 당장 극장 앞에 서게 되면 영화 간판이 눈에 띄게 되고 그것
은 영화를 보기 전, 그리고 보고 난 후 관객과의 일종의 교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로 잰 듯 말끔하게
뽑아낸 컴퓨터 그래픽 포스터에서 도무지 그러한 교감 따위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3원 색인 빨강, 노랑, 파랑과 녹색, 검정, 흰색의 페인트를 이용해 현재 아카데미 극장 450*250의 간판 두 개
와 아카데미 극장에서 운영하는 수정아트홀의 간판까지 혼자 작업하는 그는 놀라운 화장술로 오늘도 대전
극장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영화가 과학기술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담고 있는 것은 장인과 같은 '박치덕' 그에게서 나오는 인간냄새 일 것이다.
글. 사진 황규석 / 대전 시네마떼끄 대표 - 문화예술정보 net 5호(1999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