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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Apr 16. 2019

여행이란 쉼에 대한 기록이다

16일간의 경상권 여행

여행이란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행하는 목적이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대지가 꿈틀거리는 생명의 계절이 왔다.
그래서 펜이 부부는 카운티 캠핑카를 끌고 집을 나섰다.

평소 여행 스타일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첫째, 아픔을 같이하는 분과의 만남이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느 부부를 만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순백색 벚꽃이 세상을 뒤덮은 진해였다.

둘째, 마눌님의 민원 해결이었다.

지난가을 여행 때 야경으로 유명한 경주의 동궁과 월지를 지나쳤다.
그 후 수시로 서운한 마음을 내비친 마눌님에 대한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셋째, 울릉도와 독도 여행이었다.

펜이는 10년 전 다녀와서 상관없는데 마눌님의 견문을 넓혀주고 싶었다.
모임에서 기죽지 마라고ㅎ

지난 3월 29일부터 시작한 경상권 여행은 4월 13일 밤 집에 돌아와서야 끝났다.
16일간의 여행은 펜이 부부에게 나름의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여행이었다.
은퇴했더라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나서 이제는 무조건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집에 만 있기에는 그 고통이 너무 커서다.


그렇게 무작정 떠난 여행은 진해를 시작으로 부산, 울산, 경주, 울릉도, 독도, 포항, 거제도를 거쳐 통영에서 마무리되었다.

진해에서 만난 착한 부부의 애절함에 펜이 부부도 서로 두 손 맞잡고 눈시울을 적셔야했다.
세월호 사건도 벌써 5주기가 되었는데 그 부모의 고통도 우리처럼 현재 진형형이리라.


부산의 자갈지시장의 복잡함 속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군중의 무리 속에서 향수를 찾았다.

태종대의 탁 트인 바다와 산책로를 걸으며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랐다.
그렇게 여행은 기록의 연속이었다.


송정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걸으며 불과 1년 8개월 전에 아들이 걸었을 모래자국 흔적에 내 신발을 포개보기도 했다.
식당을 보며, 숙박업소를 보며, 편의점을 보며,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서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오버랩하는 아들 모습에 하염없이 울어야했다.

우리에겐 이제 희망이 없고 더이상 살 가치가 없다며 하염없이 울부짖는
아내를 보며 가슴은 뻥 뚫리고 여행의 의미는 없었다.
그렇게 송정에서 3박 4일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부산 오랑대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두 딸들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울산 슬도에서 맡는 끈적한 해풍에 후각은 살아나고 간절곶의 너른 초록 잔디와 노란 유채꽃을 보는 관광객의 모습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복궁보다 창덕궁보다 더 황홀한 야경을 연출한 경주의 동궁과 월지는 마눌님이 지난가을에 구경 안 시켜줬다고 토라질만 했었다.
또다시 찾고픈 빛의 향연이었다.


광활한 경주 역사 유적지구는 선조의 흔적을 찾거나 쉼을 얻으려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많았다.
딸내미들 코흘리개일 때 함께 봤던 첨성대와 석빙고, 불국사는 여전했다.


여러 줄의 연등은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경주의 추억은 또 하나의 트렉에 기억시켰다.

머피의 법칙이 무려 9종 세트로 완벽하게 작동된 울릉도, 독도 여행은 고생한 만큼 아주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같은 화산섬이지만 제주와 또 다른 맛이 나는 울릉도는 10년 만의 재방문이지만 완벽하게 다 돌지 못했다.


두 발로 약 보름 정도 걸어야 울릉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현지인의 말씀에 공감이 갔다.
마치 제주 올레 26개 코스 430km를 완주했던 것처럼.

카운티 캠핑카를 몰고 또다시 울릉도를 찾아야 할 이유다.
삼대가 빌어야 입도할 수 있다는 독도.


머피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만에 독도에 첫발을 내딛는 행운도 뒤따랐다.
행남 해안 산책로는 낮이나 밤에도 멋진 풍경을 자아냈다.

울릉도의 특산물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따개비밥, 해물밥, 홍합밥, 삼나물, 명이나물, 부지깽이, 섬더덕구이 등등


커다란 손에서 용솟음치는 힘의 상징인 '상생의 손' 위로 치솟는 포항 호미곶의 멋진 일출 모습은 잊을 수 없다.
토끼 모형의 하반도 조형물은 한민족임을 다시 일깨워주는 역사의 상징 같기도 했다.

밤에는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커다란 원형의 새천년기념관 조형물은 길손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문어 조형물도 인상적이었다.


한려수도로 깨끗하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거제도의 구조라항에 차박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인 '바람의 언덕'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탓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통영을 향하다 우연히 거제면에 있는 현직 대통령의 출생지를 방문했다.
빙두른 산세에 마을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바로 남정마을이다.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한창 새순을 피워내고 있었다.

도착해서 실망감이 컸다.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와 개인 사유재산 침해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출생지 옆에서 잡곡과 채소 파시는 할머님을 통해 출생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때 문재인 대통령 부모님은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이곳 남의 집에 살면서 문대통령이 태어났는데 주인댁 할머니께서 문대통령의 탯줄을 잘라줬단다.
지금은 탯줄 잘라준 할머님의 막내아들이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곳이 세간의 이목을 받은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사시는 분은 관광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 출생지가 관리가 안 된 허름한 모습에 씁쓸했다.
퇴임 후에라도 잘 정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진의 지인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악셀을 밟는데 마눌님이 통영에 볼거리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통영성 동쪽에 동피랑이 있다면 서쪽에는 서피랑이 있다.


동피랑 마을은 몇 년 전 다녀왔기에 서피랑 마을 찾았다.
서포루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의 빌딩 숲과 한려수도는 멋진 한 폭의 수채화로 시신경을 자극했다.

음악 정원과 피아노 계단, 99계단과 노란 유채꽃은 골목길을 더욱 친근하게 해줬다.
아주 조그마한 카페 같은 식당 '서피랑맛집'에서 먹은 점심 특선 제육볶음 야채 쌈은 허기진 여행길에서 먹은 최고의 정찬이었다.


16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여독도 풀리기 전인데 벌써 마음은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아마도 펜이에게는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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