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89)
지난 연말, 후쿠오카에 갔을 때의 일.
후쿠오카야 여러 번 와봤던 터라 지난번에 들렀을 때도 어디를 가야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여권을 갱신해서 따끈따끈한 새 여권에 입국 도장이든 스티커든, 흔적을 남기고 싶은 타이밍이었는데, 웬걸 '왜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저렴한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찾아낸 바람에 후쿠오카에 또 가게 되었다. 겸사겸사 생일이 그즈음이라 한 해동안 고생한(딱히 한 것도 없으면서)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허황된 욕심을 가미하면서.
어느어느 명소에 간다거나 하는 욕심이 없었기에 가서는 그저 일본 여행 때 즐겨 먹던 먹거리와 주전부리를 섭렵하고 오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뎅이었는데, 야타이(일본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뎅도 오뎅이지만 내게는 편의점 오뎅이 더 끌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덧, 우리말로 순화해서 어묵이라고 하지 않고 '오뎅'이란 단어를 쓴 건, 정말 우리네 어묵이 아닌 일본 현지의 오뎅을 일컫기 때문임을 알아주시길...)
이런 내 의도와는 달리 출발 전까지 텅텅 비어 있던 일정이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꽉 채워져버리고 말았다. 텐진과 하카타, 가장 큰 번화가 두 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고, 한국인이 야타이 거리로 많이 찾는 나카스 강변과 쇼핑몰로 많이 찾는 캐널시티에서 일루미네이션 쇼가 열렸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후쿠오카에 처음 오는 관광객 마냥 텐진, 하카타, 나카스, 캐널시티까지 제일 잘 알려진 명소만 쏙쏙 골라 이틀 동안 일정을 꽉꽉 채워가며 가고야 말았다.
여기에 평소에 안 다녀본 동네에도 가보겠다며 쭐레쭐레 다니다 보니 의외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밥은 먹어야 하니 먹고 싶었던 것들이야 어찌어찌 먹었고 카페에서 곁들인 디저트가 아닌 앞서 언급한 오뎅 같은 주전부리는 생각보다 잘 안 먹게 되었다. 그러다 겨우 둘째 날 저녁에 호텔에 들어갔다가 피곤한 몸을 일으켜 호텔 근처의 편의점에 드.디.어. 오뎅을 사러 갔는데...
바로 옆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오뎅이 없단다. 건너편에 있는 로손에도 갔는데 오뎅이 없단다. 꾸역꾸역 5분을 더 걸어가 찾아낸 패밀리마트에는 오뎅이 있을 줄 알았다. 문 너머로 오뎅 기계가 슬쩍 보였으니까.(앞서 두 곳은 아예 기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매장이었다) 그런데... 텅 빈 기계였다. 몸을 데워줄 오뎅국물은... 말마따나 국물도 없었다. 당연히 그 안에 폭 담겨 뽀얗고 탱글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야 할 오뎅은 있을 리 만무했고...
숙소가 있던 주변이 무슨 후쿠오카의 할렘가 같은 곳으로 치부되는 지역도 아니었고, 코로나의 영향이야 있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뜬금없이 오뎅을 팔지 않는 편의점이 늘어났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방에 돌아와 '일본 편의점 오뎅'을 검색해봤는데, 같은 후쿠오카는 아니었어도 실시간으로 편의점 오뎅을 사다가 먹었다는 후기가 속속 보여 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있다보니 심야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한 명만 써서 오뎅까지 판매할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라는 구글링에 내 뇌피셜을 좀 더 보태 내린 결론을 내렸다. 내가 들른 세 곳의 공통점이랄 게 바로 직원이 딱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었기에...
결국 가까이에 있는 야타이로 가서 꾸역꾸역 오뎅을 먹었다는 후문... 그야말로 한밤 중의 오뎅 타령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