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가족의 생일 때마다 엄마는 잡채를 했다. 어묵과 맛살, 기름기 없는 돼지고기, 시금치, 파프리카, 버섯, 양배추가 가득 든 잡채를. 손이 큰 엄마는 며칠을 먹고도 남을 만큼 잡채를 만들었고 식구들은 엄마가 해준 잡채를 맛있게 먹었다. 올해 내 생일에도 엄마는 잡채를 해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느 날, 잡채를 먹다 체한 적 있다. 나는 그날따라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잡채를 접시 째 들고 먹었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체할 수도 있으니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어렸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게 좋았고 결국 그 날 새벽,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잡채를 모두 게워냈다. 엄마는 정신없는 나를 안고 거실로 향했고 자고 있던 아빠를 깨웠다. 아빠는 반짇고리에 꽂혀 있던 대바늘을 가져와 내 손가락에 가져다 댔다. 어두운 거실과 주황빛으로 켜진 스탠드. 아빠는 버둥거리는 내가 다칠까봐 내 팔을 잡았고, 그럴수록 나는 더 크게 몸부림쳤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대바늘이 내 손끝을 찌르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기억은 거기서 멈췄다. 그 날 이후 나는 잡채를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잡채는 급식에도 자주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잡채는 친구들의 것이 되었다. 잡채를 비롯한 당면을 먹지 않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왜 잡채를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어릴 때 잡채를 먹고 토한 기억이 있어 먹지 않는다고 했다. 십 년 이상 잡채를 먹지 않다가 다시 잡채를 먹은 건, 1~2년 전 즈음이다.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을 맞아 엄마는 잡채를 했고 내게 간을 봐달라고 했다. 잡채에 든 야채를 먹는 건 괜찮았지만 당면을 먹는 건 거부감이 들었기에 당면 대신 야채를 조금 건져 먹었다. 그러자 엄마는 당면에 간이 잘 뱄는지 먹어보라고 했다. 잠시 고민이 됐다. 나의 몸은 당면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조금의 고민 끝에 나는 당면 한 가닥을 집었다. 약 십 년 만에 당면을 입에 넣어 씹자 기분이 이상했다. 맛은 있었지만 토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약간의 구역질이 일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그러다 평생 잡채 못 먹겠네.” 했다. 나는 입안을 맴도는 당면의 일부와 향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물에 대한 공포도 그렇고 잡채에 대한 거부감도 그렇고, 그것들은 내게 안 좋은 기억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두 가지에 대한 거부감을 나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물과 해양 생물에 대한 공포는 어린 시절 봤던 ‘딥 블루 씨’라는 영화 때문이다. 영화 보는 걸 좋아했던 언니와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상어가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 상어는 성인 남자보다 컸고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들을 씹어 삼켰다. 바다를 가득 채운 벌건 피와 그곳을 헤엄치는 상어의 모습은 내게 물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잡채 역시 그랬다. 따지고 보면 나의 욕심으로 인한 결과였다. 천천히 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듣거나 접시에 놓인 잡채를 다 먹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욕심을 냈고, 결국 성인이 된 지금에야 잡채를 다시 먹게 되었다.
나의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아 엄마는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었다. 점심으로 엄마와 잡채를 먹으며 나는 당면을 오래, 꼭꼭 씹었다. 예전과 달리 헛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토한 건 잡채를 먹어서가 아니라 ‘잡채를 급하게, 많이, 욕심내서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욕심내면 안 하느니만 못할 때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음식은 우리를 가장 빠른 속도로 기쁘게 하지만 욕심을 낼 경우엔 그것들을 모조리 게워내야만 한다.
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지만 잡채에 대한 거부감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극복하게 되었다. 이번 나의 생일엔 잡채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했으므로 행복한 생일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