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연 Aug 16. 2022

[전시] 대구미술관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대구미술관

대구시 수성구 미술관로 40


<다니엘 뷔렌 개인전>

<2022 다티스트 - 이교준 '이교준의 라티오(RATIO)'>

<2022 다티스트 - 박창서 '위치 - 나 - 제안'>



무료한 일상을 흥미롭게 하는 건 오직 고양이와 문장, 예술뿐이라고 믿는 슴씀입니다. 평범함을 가졌기에 평범하지 않은 걸 지향하는 저는 비가 잠시 그친 어느 날,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인 시튜(In-Situ)와 어린아이의 놀이


다니엘 뷔렌

1960년대 초부터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자유롭게 다루었던 뷔렌은, 작업 초기에는 원형과 줄무늬를 조합하며 작업의 간결성을 방법론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이후 1965년부터 폭 8.7cm의 흰색과 유채색으로 구성된 산업용 천을 세로로 교차 배열하는 방식을 시도하면서, 이 소재가 가진 수 많은 가능성으로부터 회화와 표현방식, 나아가 예술가가 개입하는 사회와 물리적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1967년, 길거리를 시작으로 ‘작품을 수용하는 공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그는, 갤러리, 미술관, 건축물 등으로 시선을 옮기면서‘인 시튜(In-situ) 개념을 고안하고, 이것은 지금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티브로 자리 잡는다.뷔렌에 의해 일명 ‘시각적 도구(Outil visuel)’라고 불리우는 세로 줄무늬는 그의 ‘인 시튜’ 작업이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회화, 조각, 건축물의 사이사이 혹은 특별하거나 복잡한 특정 장치의 내부에 배치된 세로 줄무늬는 그가 작업하는 공간의 중요한 특징을 담담하게 ‘폭로’한다.


다니엘 뷔렌은 모더니즘적 미술 제도를 비판하거나 고정된 시각을 유발하는 미술사조의 틀을 거부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다시 말해, 그는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적이며 비판적인 논리를 추구하는 작가인 것이다. 수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접하며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대구미술관을 방문하는 많은 관람객들이 다니엘 뷔렌의 단호하고 정제된 작품을 통해 예술의 본질에 대해 순수하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니엘 뷔렌 소개 출처 : 대구미술관 홈페이지)




다니엘 뷔렌의 개인전이야말로 대구미술관은 방문하게 된 계기이자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SNS를 통해 미리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놓인 조형물은 그 자체로 거대하고 놀라웠다. 조형물이 가진 형형색색의 색깔은 내 마음속 자리한 어린아이를 끄집어내기 충분했다.


어미홀에서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어린아이처럼 관람한 후 '인 시튜'가 돋보이는 작품을 보러 1전시실로 걸음을 옮겼다.



'인 시튜'는 라틴어로 '제자리에 혹은 본래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다. 작가는 '인 시튜'를 특정 장소를 위한 혹은 그 공간에 특화된 미술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어떠한 공간에 작품을 전시하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인 시튜'는 공간과 작품이 상호 작용하는 작업이다. 각 공간의 특성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설명 출처 : 대구미술관 리플릿)


처음엔 이것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했다. 스테인드글라스 같기도 하고 욕실에 놓인 타일 같기도 한 작품을 보며 나는 이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골몰했다. 앞서 설명했듯 '인 시튜'는 공간과 작품이 상호 작용하는 작업이다. 즉 작품과 공간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공간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작품 역시 그 공간을 돋보이게 한다. 널직한 공간에 놓인 다니엘 뷔렌의 작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작품 속 비치는 내 모습과 일그러져 비치는 미술관의 천장. 내 뒤편에 있는 미술관 바깥의 숲이 그의 작품 속에서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낼 때, '아, 이게 인 시튜구나.' 깨달았다.




2022 다티스트 박창서 

'위치 - 나 - 제안'


다티스트 박창서

'다티스트'는 대구와 아티스트의 합성어로 대구미술관의 대구작가시리즈이다. 대구와 경북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견과 원로 부문으로 나누어 선정하며, 전시를 통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2022년 다티스트 중견작가 부문에 선정된 박창서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파리 제1대학 팡테옹 소르본느에서 조형예술학 석사과정을 거쳐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티스트 및 작가 소개 출처 : 대구문학관 리플릿)




전시는 크게 '기억'과 '풍경'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생각할 수 있다. <당신의 기억으로부터>는 회색 구름 이미지와 언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 대신 아크릴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작업 방식을 택한다. 구름 이미지와 텍스트가 공존하면서 거리에 따라 이미지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텍스트가 더 잘 읽히기도 하는데, 작가는 바로 이 거리감을 통해 이미지가 언어화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나를 기억해 주세요>는 전시실 중앙에 예배당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말이나 개념을 다시 가져와 그들을 기억한다. 작품의 물질적인 요소를 차용하기보다는 예술가들이 남긴 말이나 작품과 관련된 개념적 언어들을 가져와 재해석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개념미술의 가능성을 대중과 소통하고자 한다. 


(전시 소개 출처 : 대구문학관 리플릿)



'개념미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이번 전시를 통해서다. 리플릿에서 소개되었듯 작가는 예술가들의 말이나 생각,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한다. 그 속에서 구름은 존재하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는 곧 언어의 속성과 닮았다. 예배당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공간이지만 작가는 이를 곧 추모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예술가들이 남긴 말과 생각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 고이 누워 있는데, 이는 곧 예술가들의 말과 생각을 작가가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알 수 있다(이미 죽은 자들이 남긴 말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란 얼마나 깊고 넓은가.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곧 죽은 자의 말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추모하는 마음과도 닿아 있다). 


예술은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이다. 역설적인 이 말은 곧 사실이다. 사람들은 예술을 즐기고 찾으면서도 그것을 어려워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예술 속에 살고 예술하며 산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나 역시 처음엔 '개념미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주 천천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았고 머리는 느끼는 몸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22 다티스트 이교준

'이교준의 라티오(RATIO)'


다티스트 이교준

이교준은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사진, 설치, 입체, 회화 등의 매체를 통해 꾸준한 조형 실험을 해오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선, 면, 색과 같은 조형의 기본 요소들로 절제된 형태와 구성으로 기하학적 표현 세계를 확장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이교준의 라티오

라티오는 그의 40년간 작품세계를 함축할 수 있는 단어로, 그리스어 Logos를 번역한 라틴어이다. 이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 제목은 이교준이 구축한 예술 세계를 대변한다.




앞선 전시들에 비해 차분한 느낌을 주는 전시였다. 곧게 뻗은 선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격자. 곳곳에 색이 적당히 들어가 '예쁘다'는 느낌이 강했고 안정적인 느낌 역시 강했다. 전시는 작가의 가장 최근작부터 과거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비교적 안정적인 느낌이 강한 최근작과 달리 그가 과거에 찍은 사진들은 예술 그 자체라는 느낌이 강했다. 가령 몽둥이를 꽂아둔 사진이라거나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것 같은 사진 등. 그의 초기 예술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괴짜 느낌)의 모습을 풍겼다.






몰입

- 디지털 가상공간


디지털 가상공간 '몰입'은 디지털로 만든 가상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천장과 벽에 설치된 빔은 선명한 색상으로 그림을 재현해내고 사람들은 전시의 이름처럼 그 작품에 오롯이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디지털 가상공간은 작품이 가진 색감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속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는데, 나는 이 지점이 좋았다. 얼마 전 방문한 '아르떼 강릉'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과 체험 공간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점에선 '몰입'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가진 평범함을 사랑하면서도

타인이 가진 예술성을 동경하는 슴씀의 전시 관람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