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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호 Jan 02. 2019

쉽지 않으니까 교육이다

신규교사 면접시험을 하고 나서 느낀 소감  그리고 교육 고민

신약이 시판되기 전  오랜 기간 동안 과학적 테스트, 임상시험 등을 거칩니다. 통상 1만 여개의  신약 후보물질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1-2개 정도이며, 15년가량의 연구  및 시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잘못 만든 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교육발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들이 연구되어야 하고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을 무조건 비판하면서 부정하거나 새로운 방식이 만병통치약처럼 신기하고 효과적이라고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만약 그럴듯한 홍보와 분위기, 더욱이 교육 상술에 현혹되어 중요한 시기의 학생들에게 귀한 시간을 비효과적으로 배우게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교육은 예술이면서 과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방식 중 교육학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론들은 21세기 이전이나 4차 산업혁명 이전에 나온 구식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연구와 실제를 통해 확인된 것이기도 한데... 


최근 교사 신규임용 면접에 참여하면서 예비교사들도 과거 이론과 경험적 사실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교육방식에 대해 맹목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교육  특히 학교교육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신약 개발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분야라고 봅니다.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교육은 멋있는 제목의 방법을 적용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칼럼 형식으로 이에 대한 경험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호남교육신문에도 게재했던 것입니다. 좀 길고 논쟁거리도 있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한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으니까 교육이다
 김승호∥교육성장연구소장, 전 함평교육장


 약 2주 전 도내의 한 사립중학교에서 영어과 교사 신규 임용을 위한 면접평가에 참여했다. 면접은 짧은 시간에 전문지식, 창의력, 발전 가능성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중요한 평가 단계로 여겨진다. 교직 면접에서 몇 가지 주제 중 교과 관련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공부했으며, 담당할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묻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영어과 교수법 관련으로 학습지도 계획에 대한 질문을 했었고, 답변에 따른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바람직한 수업 방법에 대한 답변은 거의 비슷했다. 신세대 교사로서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토론 수업을 통해 협동정신과 의사소통 능력을 높여 주겠다는 것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어떤 응시자는 자신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학창 시절에 단어 암기식, 문법 위주 교육 때문이라고 과거 자신의 학습방식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 주기 위해 예습이나 복습 등 숙제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답변도 나왔다.


면접이란 본래 정답이 없는 평가 방식이지만, 만약 예상 정답을 정해 놓았다면 이들은 완벽한 수준의 정답을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근거는 많다. 사고력과 창의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지식 교육, 특히 단어 암기 같은 주입식 교육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 즉 혁신교육에서는 교사의 가르침보다 학생의 배움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학생들을 다른 사람의 지식을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흥미와 필요에 따라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숙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에 필요한 역량인 배려와 협동심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토론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말들을 면접에 응시한 예비교사들은 대학에서 교직과정 수업을 통해, 교생실습을 통해서, 한국교육을 비판하는 각종 언론이나 책들을 통해서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나아가 수많은 혁신 노력에도 변하지 않는 교실수업을 직접 교사가 되어 바꿔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크게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 관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육정책 측면에서 제7차 교육과정과 함께 도입되었던 것이니 거의 20년 정도 지났다. 정확히 보면 초등학교는 2000년에 1-2학년부터, 중학교는 2001년에 1학년, 고등학교는 2002년에 1학년부터 적용되었다. 당시 영국의 1988년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 내용인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개별학습에서 팀별 프로젝트 등 학생활동 중심으로의 변화를 교육과정과 수업 실제에 그대로 도입했다. 이와 함께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자기주도적 배움 중심, 학생중심, 토론중심으로 교육을 바꾸고자 혁신학교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수업혁신 연수나 수업선도 교사들의 모델 수업은 거의 이 방향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혁신적인 수업 개선의 성과에 대해서 논란이 적지 않고, 그것의 확대 과정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가 수업의 주체로 남아 있다면, 그리고 학생이 주체가 되는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단지 수업방법만 바꿔도 쉽게 교육혁신과 교육발전을 이룰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교사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영국의 수업혁신 정책의 진행 상황은 어떨까. 영국은 국가기관의 장학지도를 통해 수업 혁신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1992년 설립된 교육표준청(OFSTED)는 강력한 권한을 인정받고 있는 장학지도 기관으로서 모든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평가하여 단위학교별 수업평가 보고서를 발간한다. 수업평가 보고서와 함께 학교별로 우수한 수업과 미흡한 수업사례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개선에 대해서만큼은 중앙집권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 교사의 수업지도보다는 학생의 배움 중심으로, 그리고 지식보다는 활동과 역량 중심으로 수업을 개선시키고자 했다.


그러했던 OFSTED는 2013년 12월 23일을 기점으로 수업평가 방식을 크게 변경했다. 더 이상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을 학생 중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쁜 수업 방식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도할 교과와 단원의 특성에 따라, 대상 학생의 수준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사의 경험과 전문성에 따라 학생들이 더 잘 배울 수 있다면 특정 수업 방법의 적용 여부는 크게 문제 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학생 중심, 배움 중심, 그리고 미래 역량 증진이라는 좋은 정책 제목보다 교육본질과 수업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특정 수업 방식을 강요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했던 교원노조(NUT: National Union of Teachers)는 이러한 변화를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초중등학교 관리자협회(ASCL: Association of School and College Leaders)는 이에 대하여 ‘학생을 잘 가르치는 방법을 정치가가 아닌 학교가 결정해야 한다(Schools should decide how best to teach, not poiticians.)’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내기도 했다.


모든 학생들이 학자들처럼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연구할 수 있기를 교사들은 얼마나 간절히 바라겠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교사들은 가르치기도 쉽고 가르치는 재미도 무척 클 텐데. TV에 나오는 토론자들처럼 모든 학생들이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서로 배운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가르치기 쉽고 가르치는 보람도 크겠는가. 안타깝지만 초․중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도 학자가 아니고 토론 전문가도 아니다. 몇 년 후 학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전문 토론자가 되기 위해 기초와 기본을 배우는 단계의 학생들이다. 


교사가 스스로 공부하도록 격려만 하고 토론을 잘한다고 칭찬만 해주면 그들이 학자와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에 따라 지식과 개념을 가르친 후에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면서 보충해 주는 교사의 성실한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이다. 영어로 잘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4명씩 조를 만들어 토론하면서 글로 발표하는 기회를 많이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영어 말하기와 쓰기의 기반인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단어를 외우도록 하고 확인도 해야하며, 교과서 본문을 함께 보면서 문법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지식교육, 특히 기본교육의 학습을 축구 훈련과 비교하면서 스페인과 남미의 축구가 다른 나라들보다 강한 이유를 예로 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들이 하는 큰 축구장에서 11명이 경기를 하면 실전 경험이 많아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될 것 같은데, 스페인과 남미에서는 중학생 때까지는 좀 더 작은 공과 작은 경기장 그리고 7명씩 인원을 줄인 경기만을 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제한한다. 롱패스나 특정한 한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짧은 패스 등 공을 다루는 개인기를 더 다양하게 더 많이 훈련시키기 위해서란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듣고, 예습과 복습도 해야 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잊었으면 또 암기해야 한다. 그래야 공부를 잘하고, 나아가 공부하는 기쁨과 자신감도 커진다. 그렇게 해야 학자처럼 더 깊이 찾아보려고 조사하고, 토론하면서도 전문가처럼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교사가 잘 가르친다는 것 또한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교과 전문성과 생활지도 전문성은 기본이고 수업방법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여러 가지 새로운 수업방식들을 부단히 시도하면서 가장 효과를 많이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확보해야 한다. 영국 OFSTED에서 실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자신이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부담 없이 활용하도록 관점을 바꾼 것처럼 우리도 이제 교사가 자신 있는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곧 새 학년도가 시작된다. 3월 초 개학일보다 20여 일 정도 일찍 교원인사를 하여 이동할 학교를 알려주는 이유는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학년과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교재의 내용 지식을 연구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교재를 연구하고 또 1년간의 수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려면 20여 일의 준비기간이 결코 길지 않다. 거기에 첫 수업시간에 안내해야 할 자신의 수업방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교육정책과 분위기에 따라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척 클 것이다. 쉽지 않은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는 일 이외의 부담을 덜고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신만의 수업 노하우를 맘껏 발휘하실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  [ 김승호 ] 호남교육신문 201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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