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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형 May 31. 2021

제시어 글쓰기 1회 차

왜 WHY?

 이전 직장에서 토요일마다 운영되던 프로그램 중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지신 분이 만드신 재미난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이름하여 제시어 글쓰기.


 룰은 아주 간단하다.  


1. 각자 책을 1권씩 지참하여 토요일 13시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자리에 착석한다.


2. 30분간 간단한 자기소개와 근황 토크를 진행한 후,  자신이 앉은자리의 오른쪽 방향 사람에게 책을 전달하여 그 책에서만 나올 것 같은 (수식어도 포함 가능) 명사를 골라 4개의 종이에 적고 적은 종이는 보이지 않게 2번 접는다.


3. 그리고 4개 중 임의로 하나를 뽑아 테이블에 제출한다.


4. 거기서 뽑힌 제시어가 포함된 글을 3시간 동안 작성한다.


5. 16시 30분에 다시 모여 함께 글에 대한 소개와 감상을 나눈다.


이번 회차에 뽑힌 4개의 제시어는 "능금", "가격 미정", "야릇한 꿈" "지속적인 이익"이었다. 아래는 내가 작성한 글이다.


‘왜?’라는 질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로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적합한 사람으로 사회화시키면서 같은 반 학우들과 나를 경쟁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좋은 성적을 받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했었다.

혹시

"능금"

이라는 과일을 아는가? 능금은 사과에 포함되나 일반 사과보다 너무 작고 신맛이 강해서 식용으로 쓰기에 부적합한 면이 많은 멸종위기종이다. 나는 능금이었다. 학업 혹은 예체능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만한 매력적인 재능을 가지지 못한 열등한 인간이었다. 다만, 이게 리더십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을 나의 주변으로 모으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이해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나 잘난 사람이 되기는 글렀으니 특별한(혹은 특이한) 사람이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기대하고 입학했던 대학교에서 나는 입학하자마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나도 그랬고 동기, 선후배 모두가 왜 대학에 입학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다들 대학교에 가니까 나도 가야 할 것 같아서 왔다.’라는 게 답변이었다. 이런 본질적인 고민을 길게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알바와 병행하는 대학교 생활은 바빴고, 나에게 고민할 여유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입대하게 됐다.

다행인 것은 1년 9개월이라는 제법 긴 시간 동안 군대에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나의 결론은 내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로 그동안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개인에게 관심이 없다. 게으르게 살아도 자신의 삶이 아니기에 누구도 이에 대해 질책하지 않는다. 졸업한 대학교나 내가 입사한 회사가 나를 책임져 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본인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영감을 받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현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을 기대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지나온 삶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는 있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점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평생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은 아주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학위 때문에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대학교에 돌아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학교를 떠났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보편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적어도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호주와 캐나다에 살면서 적당히 해이해진 열정으로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했던가 한국으로 되돌아오니 한국 사회는 2년 동안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나이는 20대 후반인데 대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것과 워킹 홀리데이라는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나의 능력은 심판대에 올려졌다. 하지만, 내게는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강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학업과 병행하며 시작했던 리테일 업계에서의 경력과 비루하지만 생존을 위해 익힌 영어 회화 능력으로 운 좋게 그동안의 경험을 모두 살려 업계 1위를 다투는 경쟁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Supervisor로 다른 동료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코로나라는 오프라인 시장에 위기가 닥치면서 스무 살 초반에 인턴 이력서를 제출한 적 있었던 스타트업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업계를 바꾼다는 선택은 정말 무모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형 오프라인 의류 매장을 관리해오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나는 잠재력만 가지고 있는

"가격 미정"

의 중고 신입이 됐다. 말로만 듣던 스타트업에서 낯선 업계 용어들과 툴을 사용하며 미팅에 참여하는 것이 육체노동이 익숙했던 내게 처음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코카콜라 CEO에게 던졌던 ‘평생 설탕물만 팔 것인가,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기억하며 늘 세상을 바꿀 서비스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일했다.

 스타트업이라는 업계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리스크가 매우 크다. 3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은 30%가 안되고, 10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다만, 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회사를 세우고 성장시켜 Exit(회사 매각) 하거나 유니콘 반열에 오른다면 직장인은 평생 모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보상과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대표로서의 명예, 기업을 운영함으로써 국가에 일자리를 창출하여 기여할 수 있다는

 "야릇한 꿈"

을 꾸며 스타트업 업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시작한다. 처음에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접한 스타트업 관련 서적을 통해 나는 점차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내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창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관련 서적은 절대 창업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유는 물어볼 것도 없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기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이익”

을 얻지 못하면 언제든 파산할 수 있음으로 창업 시작부터 성장 곡선이 J커브를 그리기 전까지 끊이지 않는 자금난과 싸워야 하며 직원 관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대표라는 이유로 온전히 떠안아야 하므로 겉으로 보이는 잘 포장된 스타트업의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모든 창업가에게 창업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어렵다는 걸 이미 잘 알지만 본인이 이미 성공한 특별한 창업자들과 공통점이 많고,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나는 부분인 것 같다. 아마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창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리라. 10명이 시작하면 9명은 망하는 일에 인생을 거는 것은 사실상 도박과 다름이 없다. 이것이 정말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시간을 들여 충분히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결국에 후회할 거라면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후회하고 싶다. 그게 내 삶의 모토이자 이유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습을 통해 앞으로 겪을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뿐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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