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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Sep 13. 2022

아주 특별한 열 개의 도시 이야기

─『도시의 세계사』 옮긴이의 말

거대한 시간의 강, 역사


소설 『신의 카르테 2 : 다시 만난 친구』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순간의 기적도 찰나의 감동도 거대한 시간의 강 속에서는 없는 것과도 같다. 은하수 안에서는 영웅의 별자리조차 보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시간의 강 속에서는 사람의 생명조차 촌각의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일 수 있다.’

 이 책을 옮기는 내내 이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기원전 고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역사는 거대한 시간의 강이었다. 이 책은 그 강 속에서 찰나에 불과한 순간들을 살아가며 저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흥망성쇠를 오가는 도시의 모습들을 담아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저자의 지식을 편안하게, 함축적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세계사의 포인트를 ‘도시’에 두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파리・뉴욕・런던 등 관광으로 다녀오거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했던 그 도시들이 색다르게, 그리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를 테면 별생각 없이 ‘월스트리트’ 또는 ‘월가(街)’라고 불렀던 그 이름이 과거 네덜란드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벽(월, Wall)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눈이 동그래지는 식이다. 각 장의 제일 마지막에는 연표가 있어서 한 번 더 정리하며 머릿속에 확실히 담아둘 수도 있다.



미처 몰랐던 도시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역사 과목도 좋아했다. 유적지에 가면 수십 수백 년도 더 전에 선인들이 이곳과 이 땅을 밟았을 모습을 상상하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들뜨기도 했다. 과거를 살았을 사람들의 흔적을 현시대에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지명을 찾기 위해 지도를 검색해 보고, 인명을 찾다가 특정인의 일대기를 접하기도 하고, 문헌・사진・그림 등 온갖 자료를 뒤적이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도시 하나하나가 독자적으로 변천해 온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 나의 무지가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인 나의 남편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를 수도 있지. 모른다는 건 잘못이 아니야. 누군가에게는 상식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각자 상황이 다르고 사고가 다르잖아. 몰랐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알아 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와 타인의 ‘무지’에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바란다. 이 책을 손에 드는 독자가 각 도시를 향한 저자의 애정을 느끼고 도시의 역사를 음미해 가는 여정에 나의 미천한 재주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시간이라는 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아내는 무수한 오늘들은 먼 훗날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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