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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를 Jun 03. 2020

동네에 카페가 생겼다

3분 오디션과 달고나 커피

동네에 카페가 생겼다.



우선  곳이 여러모로 내게 최적인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 취준 3년차, 어딜 들어가게 되든 올해로  생활은 마지막이라 마음 먹고 집중할 것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식구들 눈치밥 먹는 대신, 자소서든 스터디 발제문이든 뭐라도 끄적이며 노트북에  박고 있으려면 좋은 동네 카페가 필요하다.  동안 애용하던 스벅이 유독 붐빈  벌써   째라 나는  새로운 카페에 절실하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밖에서 보기엔 적당히 힙하고 적당히 실용적인, 모든  그다지 두드러질게 없는 무난한 곳이다. 여기도 물론 어느 하루 아침에 인스타 성지가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우리 동네는 연희나 한남 같은 곳이 아니니 그렇게 되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날을 잡고 방문을 했다. 우선 기본적인 커피 맛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것이다. 만약 여기서 탈락하면 다음 관문은 없다. 너무 오래 머물러서 허기가  때를 대비해, – 아끼느라 대개 그럴 일은 없지만- 베이커리 맛은 어떤지도 오늘 확인해야겠다. 문을 열었다. 의자들은 그럭저럭 편안해 보이고  테이블과의 간격도 나쁘지 않다. 작은 공간이지만 혼자 와서 노트북 작업하는 손님들도 배려하겠다는 의사의 표명, 널찍한 공용 테이블도  가운데 놓여 있다. 음악이나 실내 온도는 다음 문제다. 들어가 앉아 보자.



-어서 오세요.



슈슈슉- 우유 스팀 소리와 함께 요즘 카페답게 지나치게 상냥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적절한 태도의 주인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얼핏 보니 저번에 지나갈  있던 사람이랑 다른 사람 같다. 알바인가? 주인이든 직원이든 간에, 과연  사람이 앞으로 나를 다정한 단골로 살갑게 맞아줄 사람인지 아니면 달갑잖은 죽순이 1 손님으로  사람인지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비어 있는 가장 구석 자리를 잡고 음료를 고르러 메뉴판과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어라.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내가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나만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눈썰미가 좋은 나는 언제나 나만 알아보는 얼굴들이 있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3 ,  취준을 시작한 내게 대한민국의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것으로 유명한  대기업 계열사의 필기 시험을 통과하는 운이 주어진  있었다.  때까지만 해도 서류 합격부터가 처음이라 김칫국을 잔뜩 마시며 의욕적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했는데,  다음 단계라는  당시 취준생들을 골머리 앓게 만들기로 악명 높았던 3 오디션이었다. 현장에 소품을 준비해  3 동안 나에 대한 소개를 하거나 3분짜리 자기소개 영상물을 만들어오는 미션이었다. 나는 나의 끈기와 도전 정신을 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심사위원들 앞에서 달고나 커피를 만들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그렇다. 달고나 커피가 이렇게 대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이걸 해먹었던 것이다. 당시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나는 믹스 커피를 빠르게 수백  저으면 달고나  거품이 된다는  우연히 발견했고,  고된 중노동을 퍼포먼스로 승화시켜 보기로  것이다. 3 오디션 당일,  카페 주인은 바로   순서 지원자였다. 우리는 대기실에 나란히 앉아 각자 준비해온 것들을 조용히 연습중이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랑 얼그레이 까눌레 하나 주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얼그레이 까눌레요. 7,800 계산해드리겠습니다.



나긋하면서도 동시에 심지가 느껴지는 목소리, 그리고  살짝 쳐진 듯한 눈매,  사람이 맞다. 3  3 오디션 대기실에서  것보다 뭐랄까, 스타일링이   카페 하는 사람 같아지긴 했다. 물론  때는 정장 비스무리한  입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와치캡을 쓰고 팔뚝에 타투도 있는 것이, 공채 면접자나 회사 신입 사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사람을 봤을 때부터 첫눈에  타입이라 내가 앞으로  얼굴을 잊어버리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고백하자면   이때껏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한우석 , 들어오세요.



옆에 앉아 우유통과 커피 믹스와 보울과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는  꼴이 살짝 부끄러워질 무렵, 그는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면접방으로 들어갔다. 준비물도 없이 저렇게  몸으로 들어가서  하려는 걸까. 일단 자신감 있는 태도가 부러웠다. 안에선 노랫소리 같은  들린  했고 10 정도 지난  약간 상기된 모습의 그가 나왔다.  끝난 자의 여유라도 생긴 건지  눈을 마주치며 끄덕, 목례까지 하고는 대기실을 빠져 나갔다. 곧바로 차례가  나는 면접관들 앞에서 아주 적당하게 면접을 망쳤다. 예상 밖의 치명적인 실수를   아니지만,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빠른 속도로 커피를 휘젓는  모습을 내내 무표정하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놈의 3 오디션 심사위원들 태도에 말렸달까.  반응이 아닌데. 그렇게 나는  기업과는 안녕을 고하고 말았다. 그리고 물론  다음,  다음 다음 회사와도.



아메리카노와 까눌레 맛이 나쁘지 않았고, 카페  백색 소음도 적절했고, 화장실엔 물을 타지 않은 이솝 핸드솝이 비치돼 있어서 나는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한우석 씨를 다시   있어서만은 아니다. 3   , 집으로 돌아오던 지하철 안에서 구글링으로 학교와 전공 정도는 알아냈지만 금세 이게  무슨 짓이냐 싶어 접었던 기억이 났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출근하다시피    새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사이 주말에는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 가게를 보고 있기도 했는데 대개는 한우석이었다. 나는 다음  있을 직무 면접의 PT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테이크아웃 손님 외에는 가게에 나밖에 없었다.  



-면접 준비, 하시나 봐요.



 정도 얼굴을 봤으면 말을 걸어도 실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너무 자주 나타나는 내게 한가할   정도는 걸어줘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머리 속이 잠시 복잡했지만 빠르게 목소리를 재정비했다.



-, .



-어떤 회사 준비하세요?



-그냥, 여기 저기이제 별로 가리질 않고 있어요.



-그렇구나저도 회사 다니다가 관두고 이거 하는 건데. ** 잠깐 다녔거든요.  2 ?



 역시,    놈의 3분짜리 오디션에서 합격했었구나. 너만   신입사원이 되어 회사를 다녔구나.  때부터 2 넘게 내가 제자리 걸음하는 동안 너는 퇴사까지 했구나. 해로운 마음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는 카운터 쪽으로 몸을 살짝 기댄  넙죽 넙죽 대화를 이어갔다. 눈치 없이 지루하게 주절댄다는 느낌 없이 밝고 소탈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후천적 기술과 선천적 매력이 동시에 갖춰진 사람이었다. 면접관들도 지금 나처럼 얘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빠져들었겠지,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덮쳤다. 그의 얘기를 요악하면 이랬다.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갔고, 방송  마케팅 기획 부서에 발령 받아서 일했고, 다만 선배들이나 하는 일이나 사내 문화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입사 지원자 앞이라 말을 조심하는 건지 그는  대목은 간단히 말하고 넘어갔다. -원래 알던 형들  명이랑 각자 얼마씩을 투자해 여기에 카페를 차리면서 퇴사를 했고, 돌아가며 카페에 상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본업이 있으니 유일한 퇴사자인 자기가 평일 대부분은 나와 있다고.  간의 일을 단숨에 너무 말끔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조금 얄밉기까지 했다.



-언제   사람 없을  달고나 커피 마시러 와요.



-?



-아니, 원래 여기 메뉴에 넣을까도 했었는데, 너무 유행 타는 그런 메뉴 있으면  갑자기 이디야커피 같잖아요. 우린 다들 커피에 자부심도 있고. 그래서  넣었거든요



-달고나 커피요?



-암튼  근데,  팔힘이  좋아서 그거 맛있게 만들  있어요. 제가 해줄게요.



정신이 문득 혼미해졌다. 얼굴이 급속도로 화끈거리는  설레서인지 치욕이 앞서서인지, 설레야 하는 건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 돌아오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아무런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러면 내가 아는 척을 해야 되는 건데, 말아야 되는 건데. 너는  이제 그것까지  만드는 건데.



어느새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돌아간 한우석이 가만히 서서  쪽을 향해 물끄러미 웃고 있었다.  스파이크가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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