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동대문 바닥에서 나의 시간은 흘러갔다.
의상학을 전공하고 의류업을 택한 나에게, 동대문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나의 삶의 터전이자 미래라 믿었던,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곳은 아픈 추억의 장소로 변해있었다.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로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영상이 돌아가듯 나의 젊은 시절의 필름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물끄러미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은 분명 지금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부단히 도 발버둥 치던 젊은 날들의 영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천막 그늘 아래서 3,000원짜리 백반을 서서 먹으며 내일을 기약하던 나의 젊은 날. 등에 작은 아들을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힘든 줄 몰랐던, 팔팔했던 그 젊은 나날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장소에 다시 서게 된 것은 그의 선물이었다. 모든 곳에서, 모든 마음이 편안하길 기도하는 이 남자의 배려였다.
서로의 아픈 기억들은 지금 각자 잘 아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잠시 떨어져 있는 나를 두고 가는 것이 못내 마음이 쓰였을까?
시간이 흐르고 아픈 곳들이 잘 아문 것을 보고 다녀와야 마음이 편했던 걸까? 그의 따뜻한 마음의 온기가 그대로 와서 나를 포근히 감싸준다. 그의 섬세한 배려들이 이렇게 나의 하루를 채워주고 있음에 고맙고 감사하다.
어스름한 새벽녘도 아닌 어두운 새벽에 눈이 떠지고야 말았다. 새벽녘에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물끄러미 밖의 작은 푸르른 소나무와 마주 선다.
잔잔한 강물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가 나에게 오듯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른다. 벅차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여 잠이 자고 싶지 않은 새벽녘!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을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 설렘을 만끽하고 싶은 새벽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