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벨'의 선율이 나에게 가르쳐 준 '예술의 위대한 힘'
어느 날 아침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그 남자와 함께 매일 아침을 열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과 연관되어 알게 된 그 남자의 이름은 '조슈아 벨'
그 남자는 화면 안에서 매우 열정적이다. 자연경관이 사진에 다 담아지지 않듯
화면이 그 남자의 열정을 다 담지 못하는 듯하다.
열정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연주한다.
그 열정에 매료되어 매일 아침 그 남자의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나의 하루 시작이 되었다.
듣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그 남자를 보고 싶어, 영상까지 틀어놓고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늘 아침을 그 남자와 함께 열며 생각해 본다.
"저 사람의 음악을 실제로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매일 아침 진실된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 까지는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앨런 길버트'의 지휘 아래 첫 음악은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였다.
연주자들의 손놀림도 현란한데 발놀림까지 현장에서 들으니 환상적이었다.
첫곡을 마치고 자리 배치가 바삐 이루어졌다.
그 남자가 서서 공연할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에서만 보던 그 남자가 들어온다.
검은 정장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살포시 들고 당당히 들어온다.
그 남자가 시야에 들어오니
나의 심장은 막 시동이 걸린 경주처럼 굉음을 내듯 뛰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나의 심장은 온데간데없었다.
달리기를 할 때보다 더 빨리 뛰는 심장을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제동이 되지 않는 나의 심장은
나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중이었다.
"이런 가슴 벅참의 심장을 언제 느껴보았던가?"
그 남자가 어깨에 바이올린을 올린다.
현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 눈을 부드럽게 감는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선율 하나하나를 넘겨준다.
귀한 보석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건네주듯, 손끝에서 아름답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작고 여린 마음들을 선율로 넘겨주기도 하고,
가녀린 여인의 슬픈 표정도 선율로 넘겨준다.
모든 연주자들이 연주를 멈추고 그 남자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화면 건너 들리던 숨소리마저 건너오는 듯하다.
"죽기 전에 이런 순간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예고 없이 불어온 태풍처럼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황홀함이 나를 휘황찬란하게 감고 있었다.
그의 연주가 끝났다. 누가 시계를 누가 마구마구 빨리 돌려감 기를 한 듯하다.
그가 인사를 하고 나가니 마음이 쓰라리게 아련해진다.
그가 다시 바이올린을 들고 들어온다.
나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그려진다.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다해 박수를 쳐본다.
연주 중에 손수건을 꺼내 얼굴 닦는 모습까지 직접 보니 너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살면서 나를 깨우는 것들을 만나 보았나?
살면서 나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것들을 만나 보기는 하였나?
그 남자의 동시대에 살고 있고, 이렇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한 사람의 음악이 타인의 삶을 너울거리게 만든다.
흥얼거리게 만든다.
설레게 만든다.
행복하게 만든다.
삶에서 이런 소중한 것을 만나다는 것이 기쁘다.
숨 막히던 그 황홀한 밤이 지나고, 다시 일상의 아침이 밝았다.
커피를 내리고 화면 속에서 여전히 열정적인 조슈아 벨을 만난다.
더 깊은 이해와 존경심으로 그의 선율을 마주한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던 귀한 보석 같은 음 하나하나가 어둠을 뚫고 아침 햇살처럼 스며들어 온다.
어제의 전율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 남자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바이올린이 주는 이 작은 행복이야말로, 힘든 삶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우리들의 힘든 삶 속에서 이런 행복을 만나는 일이
삶은 견디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예술인들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당신의 삶 속에서도 이 같은 행복을 통해 삶을 행복으로 만들어 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