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밤새 아이를 재우느라 무거워진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려 정신을 차려보니 지난 밤 나를 괴롭혔던 장본인들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웃고 떠들며 놀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잠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입니다. 아침잠을 푹 자야 하루를 개운하게 보내는 편이라 부모님이 저를 깨우실때마다 짜증을 내곤 했었지요.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 내 편안한 아침잠은 전설 속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판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제 앞가림을 하는 첫째 덕에 둘째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는 상황임에도 말이죠. 아침밥을 얼른 먹이고 대충대충 씻긴 뒤 적당히 옷을 입혀 정신없이 뛰어 나가야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둘째는 아빠 맘도 모른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있습니다. 밥을 먹는 건지 부엌놀이를 하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게 더 많네요. 그런 아이를 재촉하고 또 재촉해 겨우겨우 식사를 마칩니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급히 아이들의 옷을 고르기 시작해요. 오늘 밖은 몇도인지. 추운지, 더운지. 상의와 하의의 디자인은 좀 어울리는지. 엉크러진 머리는 또 왜 이리 눈에 거슬리는지. 이런저런 고민 끝에 옷을 고른다음 기저귀와, 물티슈까지 챙겨서 둘째를 부릅니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나 했더니 또다시 시작된 아이와의 숨바꼭질. 당장 10분 후 면 통원차량이 올 시간인데, 1분 1초가 아까운 이 순간에 커튼이나 이불 밑에 얼굴만 겨우 숨긴채 뻔히 뒷태를 드러낸 모습으로 ‘OO이 없다~ 찾아봐라~.’ 하며 숨어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웃음이, 한편으론 한숨이 나옵니다. 장단에 조금 맞춰주는 척 'OO이 찾았다~.' 하고 아이를 꼭 안으니 그윽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아침쾌변은 하늘이 내린 복이라던데 이 녀석은 복을 아주 다발로 받았나봅니다. 기저귀를 까보니 샤워를 시켜야 될 정도로 아주 푸지게 쌋습니다. 시간이 없어 물티슈를 10장씩 써가며 닦고 또 닦습니다.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 지지만 그래도 내 새낀데 하면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아이에게 ‘아이구 우리 OO이~ 잘~~ 쌋네~~ 잘했어~!’ 칭찬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옷을 입히다 보면 뭔가를 눈치챈 아이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지요.
아이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면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걸 아는가 봅니다. 왜 모르겠어요. 모른척, 딴짓하는 척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어떨 땐 달래기도하고, 사탕이나 과자를 주며 꼬셔보기도 하고, 정 안되면 한 번씩 혼을 내면서까지 겨우겨우 통원차량이 오는 장소로 아이를 데리고 갑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정신없이 통원차량에 아이를 태우려고 하니 아이가 울기 시작하네요. 통원차량을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기까지 합니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져요.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엇나?요즘 안좋은 뉴스도 많이 뜨는데.. 괜히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밥도 잘먹고 애들이랑 잘 논다고 들었는데. 막상 차에 타고나면 뚝 그친다는데 왜 매번 아침마다 저러는지. 내가 편하자고 괜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걸까. 육아휴직 중이라 내가 하루종일 데리고 있어도 괜찮긴 한데. 내가 편하려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까. 그래도 어린이집에 가면 집에 있는 것보단 배우는게 더 많을텐데 등등..
그렇게 아이를 차량에 태워 보내고 몸도 마음도 지쳐 진이 쏙 빠진 채 터덜터덜 집에 들어오면 안방에 널부러진 이불부터 아이들이 먹고 간 아침식사의 잔해들 거실에 여기저기 흩어놓아 어질러진 장난감들까지 매일 반복되는 모습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와 가슴이 턱 하고 막힙니다. 일단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각종 장난감과 이불등을 정리하고,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도 좀 하고, 설거지까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도 또 막막합니다. 매번 이 순간과 마주칠때면 ‘난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자꾸 올라와 내 맘을 괴롭힙니다. 참 어찌보면 허무한 일상의 반복. 그동안 나대신 육아를 해왔던 아내가 참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무에 매일 물을 준다고 자라나는 나무의 모습이 당장 우리눈에 보이지는 않잖아요. 어느 순간, 나무가 자라있음을 지각하는 때가 있고 자라버린 나무를 보며 이전에 나무를 기를때 겪엇던 과정들은 어느새 기억속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곤 하지요.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볼때 ‘언제 저 아이가 저렇게 커버렸지?’하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벌써 저렇게 커서 혼자 밥 먹고 옷도 입고 샤워까지 한답니다.
아빠가 힘들어보일때면 시키지않아도 둘째를 돌보기도 하네요. 이제 갓 8살이 된 아이인데 어찌 저리도 의젓할까.
너무 고맙고 대견하지만 한편으론 또 미안하기도 합니다. 동생 때문에 훌쩍 커버린 누나. 엄마아빠를 둘째에게 빼앗긴거 같다며 징징거리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저리 커서 동생을 챙기는 첫째를 보며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아마도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속에 우리 아이들은 자라나는 건가 봅니다. 대체 내가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할 만큼 단순하게 반복되는 매일의 하루가 어찌보면 내 아이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거름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을 쓰며, 저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제 마음이 좀 정리가 되네요.
청소기 돌리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