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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Jun 13. 2019

나는 어쩌다 가정적인 남편이 되었나

일을 마치면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강박에 가까운 저를 발견한 날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가정적인 남편이라며, 아이를 참 사랑한다며, 아내가 정말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기분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나는 왜 이리도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아픔들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영적 대물림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가정의 좋지 않은 내력들이 이어지는 현상을 뜻 하는데,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와 그 부재로 인한 생채기들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내적 치유를 위한 끝없는 자각의 과정 속에 ‘이제는 괜찮아’라고 이야기 함에도 그렇습니다. 어릴 적 나를 떠난 부모를 용서하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일까요.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거쳐 아버지를 만나고 난 뒤에야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시간여행까지 보내야 했겠습니까.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일 겁니다. 헤어진 지 25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켠이 아려올 만큼, 어린 시절의 나에게 부모의 이혼이라는 대사건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내가 겪었던 부모라는 세계의 붕괴를 결코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무의식 중에 깔린, 내 상처로부터 비롯된 그 생각이 결혼 이후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토록 선호했던 것도 아버지의 사업실패가 가정이 깨어지는 트리거였기 때문이겠지요. 일이 끝나면 직장에 남아있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인생의 절대 우선순위를 차지한 것도, 아내와 둘이서 보내는 순간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것도. 내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준 과거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보여준 모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의식의 발로였을 겁니다.


예전에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절대 닮고 싶지 않은 부모의 좋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들 때문에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부모를 용서해야 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모습을 부정하고 비난하면 할수록 그 모습에 매몰되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모습을 따라가게 된다는 이야기. 감사하게도 지금의 저는 제가 그토록 미워했던, 미워하다 못해 지워버리려 애썼던 아버지라는 존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용서 한 것일까요. 아마 용서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헤어져 만나지 못한 25년의 세월이 어떠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신다 해도, 잔잔한 미소 지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겠네요.’라는 이야기로 맞장구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던 아버지께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쥐어주신, 주머니 속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었다고. 이제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이야기, 전해보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실수할 때 있잖아요.

상대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내 안에 캄캄한 감옥을 지을 수밖에 없어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는 용기가 있어야

나의 삶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고 싶다면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요    

 

- 이근태, ‘너를 사랑했던 시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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