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이 꽃이여

판소리 춘향가 / 김금숙 / 교보문고

by 운고


지금이야 판소리 만나기가 어렵지만 어릴 적엔 TV에서 곧잘 조상현, 박동진 선생 등 명창의 판소리가 시나브로 흘러나왔다. 자주 듣다 보니 귀동냥으로 몇 소절 흥얼흥얼 읊조리기도 했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같은 맛깔스러운 가락도 그렇고 흥부가 놀부 아내에게 볼태기를 맞는 장면 등은 꽤 흥미로워서 우리 오 남매 즉흥극에도 여러 번 변주되었다. 지난가을 전주에 갔다가 우연히 한옥 마당에서 펼쳐지는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되었다. 운 좋게도 명창 턱 앞 직관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심장이 두근거려 죽을 뻔했다. 소리에 조예도 없는 사람인데도 혈관을 쥐어짜며 토해내는 소리가 고스란히 내게로 쏟아져 그녀를 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쑥~~ 대 ~머리~, 서럽게 우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TV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었다. 춘향이와 몽룡이가 그네에서 사브작사브작 노는 춘향가를 기대했는데 쑥 같이 흐트러진 귀신머리라니, 그의 절절한 소리, 손짓, 눈빛에 내 손도 저절로 허벅지 장단으로 힘을 보탰다. 응원하고 소원하게 하는 힘, 이것이 판소리의 맛인가 보다.


원본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귀동냥, 눈동냥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 독서를 통해 <판소리, 춘향가>의 전후 맥락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열여섯의 앳된 소년 소녀였고, 이 어린 연예가 노래롤 불려질 땐 제법 외설이 짙었던 모양인데 뒤늦게 관객으로 참전한 양반들이 봉건적 질서로 뼈대를 공고히 하고 한문 투와 고사, 경전을 인용하며 지금의 고상하고 점잖은 판소리계 소설로 엮어냈다. 정돈된 이야기가 이 정도이니 이야기가 귀했던 그 옛날, 장터 마당에 자리를 펴면 BTS를 넘어서는 인기에 1000만 관객의 영광을 누렸을 듯하다. 이리저리 변주를 주어 관객을 쥐락펴락,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한민족의 흥 DNA에 어깨 뿜뿜이다.

본 마당은 몽룡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눈물의 서약식을 거행하는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다. 변주가 있어야 재미가 증폭되나니, 변학도의 등장은 놀이판의 관객을 쥐락펴락, 흥행의 키가 되었으리라. 못된 인물일수록 몰입은 깊어지고 춘향이의 절개가 귀해질지니 변학도는 수청을 거절한 춘향을 감옥에 가두고 죽음을 불사하는 춘향은 초주검이 되어간다. 이때 등장하는 곡이 '쑥대머리'이다. 짜자잔, 암행어사가 되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몽룡, 춘향은 사랑도 지키고 정실부인으로 신분도 다지고, 덩실덩실 더덩실 월매도 관객도 춘향이도 멋지게 인생 2막을 연다. 덩실덩실 더덩실.


제대로 읽으니 그 맛이 제대로다. 사랑의 서사시를 넘어 조선 후기의 평민 의식을 대변하며 탐관오리의 횡포에 저항하는 사회적 의식까지, 스토리가 탄탄했다. 사랑 이야기라는 편견을 넘어설 수 있어 다행이다. 뭐든 제대로 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 보아야 예쁜 것처럼. 제대로 시간을 내어 읽으니 춘향이가 시대의 여인상이요 참으로 예쁜 꽃이었다.


그럼에도 잠깐, 타인의 사랑에 깐깐한 나는 춘향에게 묻고 싶다. 변학도가 몽룡보다 나은 서사를 가졌다면, 거지꼴의 몽룡이었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열사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동지의 목숨을 놓고 김마리아 열사처럼 조국을 우선할 수 있을까. 생각의 끝은 늘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작고 이기적이라는 자각에 민망할 따름이다. 사랑이라 해서 다르지 않으리라. 거센 비바람에 떨고 있는 이를 내 우산으로 이끈다는 건 함께 그 폭우를 견디겠다는 무언의 의지다. 그러나 그 순간 비 한 방울 들이치지 않는 꽃가마에서 누군가 손을 내민다면,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아마도 홀라당 마차에 뛰어오를 것 같다. 춘향이라 해서 다를까. 변학도 꽃가마가 허술했던 게 이유라고, 그녀의 기개에 쫄기 싫어 이렇게나마 소심한 객기 부려본다. 여자 다 비슷하지 않나?


김현철 화백이 그린 새 춘향 영정이 최근 전북 남원시 ‘춘향사당’에 봉안됐다. 새 영정과 관련해 ‘도저히 10대로 보기 어렵다’는 등의 논란이 일자 김 화백은 “시대가 바뀌면 여성

민담에서 판소리로, 판소리에서 소설작품으로 자리 잡은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 그녀는 소설 속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물화가 존재하고 하물며 실재하는 묘도 있다. 이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남원골의 후세들이 일찍이 조선 세종 때 세워진 광한루에 춘향전 서사를 잘 얹은 덕분이다. 그들은 광한루에 춘향과 몽룡의 그네를 만들고 사랑을 나누던 월매집을 지어 춘향전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스토리텔링의 성공으로 닭이 먼저 알이 먼저, 처럼 소설이 먼저인지 광한루가 먼저인지 헷갈려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서사의 힘은 크고도 오묘하다. 이는 최근에 광한루를 방문했을 때 해설가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인데 그 정보들이 식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할머니가 켜놓은 국악 방송에 어린 귀에도 야리꼬리 재미는 대목은 쏙쏙 들어앉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데면데면 촌철살인의 사설을 날렸다. 그 어감이 재밌어서 우리는 깔깔거렸다. 그날은 우리가 춘향이의 미모를 시기하고 있었을까, 전후 기억은 없지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한마디가 있다.




춘향의 묘

"느그들이 꽃이여, 스무 살만 되면 몽룡이 한 궤짝은 달려 들 거여."


내 나이 스물이면 몽룡이들이 문 밖에 줄을 선다는 말씀, 빈말일지라도 얼마나 좋던지. 내심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막상 스무 살이 되었을 땐 그네의 낭만은 사치였다. 뜨거운 세상은 우리에게 춘향이가 돼라 등을 밀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춘향의 마음으로 몽룡이, 춘향이 하나 되어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혹독한 체류탄을 견뎠다. 꽃으로 산화 한 벗들, 그들의 붉은 피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을까. 편리한 세상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팍팍한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 건지.



한 세상을 살아내고 예순 언저리에 선 지금은 욕심 없다. 못난이 이몽룡, 우리 아들 눈에 그네 타는 춘향이가 어서 속히 들어와 우리 집 춘향전을 재밌게 써 나갔으면 싶다. 제대로 한 판 놀 준비는 됐는데 춘향전이 멈춰있으니 원, 아들아, 안테나를 높이 세워보자.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음악이야기를 차근차근 짚어주는 책이다. <판소리, 춘향가>로 만난 판소리부터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약, 대풍류, 시조, 가곡, 대취타, 민요, 산조, 풍물놀이 등의 우리 음악 전반을 듣고 읽을 수 있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