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석은 상처를 이겨낸다

음악가들의 초대 / 김호철 / 구름서재

by 운고



태풍이 불어오면 닭은 자신의 날개에 머리를 파묻고 숨지만 독수리는 오히려 날개를 활짝 펴 바람을 타고 안전한 곳으로 날아간다는 글로 천재 음악가를 소개하고 있는 책, '음악가들의 초대'. 태풍에 맞서 날아올랐던 이들,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가 피워낸 음악을 만났다. 들지 못하는 작곡가 베토벤, 평생 피아노 한 대를 가져보지 못한 슈베르트,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들의 삶의 여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태풍을 타고 날아오를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바람은 견디고 비는 묵묵히 맞았다. 그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교양인의 결을 갖춰보고자 여러 번 노크했었다. 그때마다 서너 페이지 읽다 나가떨어졌고 우연한 기회에 명곡을 마주해도 그 순간 잠깐, 어 좋은데 하고 그만이었다.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얼마나 익숙한 이름인가, 김호철 작가의 손을 잡고 그들을 만나는 여정에 탑승하고 보니 내 귀에도 제법 익숙한 음악들이 있었다. 그가 소개해 주는 음악들을 들으며 글을 읽으니 어렵지 않았다. 벗이 되는 방법은 제법 간단하다. 그를 알면 이해되고 이해하면 공감하게 된다. 마음이 열리니 귀가 열리고 마음에 들어온 음악들이 벗인양 차분히 내 안에 둥지를 튼다. 더 나아가 그 곡을 빛나게 해주는 멋진 연주자와 지휘자, 가수를 찾아 나서니 뽀시롱뽀시롱 근본 없는 귀에서도 미세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렇게 음악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구나, 음악 보관함이 두둑해지니 곳간이 채워지는 양 든든하고 보람찼다. 지금은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연주와 함께 하고 있다.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그리고 이름 없는 음악가들 중 서사로 나를 가장 매료시킨 이는 슈베르트이고 음악으로 놀라게 한 이는 바흐다. 바흐의 음악이 놀라웠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첫 챕터 첫 대면, 클래식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팽배한 순간 마주했기 때문이다. <브란덴부르크협주곡 4번 1악장>으로 첫인사를 나눴는데, 태어나 처음 듣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신세계였다. 읽던 페이지를 멈추고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근사하고 이런 내가 신기했다. <브란덴부르크협주곡 5번 1악장>은 한낮의 무료함을 깨부수는 명랑하고 쾌활한 선율에 반해서 정오의 감상곡으로 제격이다. 바르셀로나의 고서점에서 잠자고 있던 악보를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가 발견해 세상에 내놓았다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은 듣고 보니 아하, 내 귀에도 익숙한 선율이 있었다. 카잘스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심쿵했다. 슈바이처도 존경했다는 바흐, 슈바이처가 당대 최고 권위의 바흐 연구가였으며 오르간 제작자이자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다는 깨알 정보는 바흐의 음악이 최고라고 인증이면서 바흐에 반응하는 내 귀도 막귀는 아니라는 의미여서 내심 행복했다. 슈바이처와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바흐의 음악으로 자주 내 공간을 채우게 할 것 같다.



슈베르트는 뭐랄까 가슴 한편이 시려오는 느낌이었다. 하느님은 천재성에는 혹독한 시련이 짝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모차르트, 베토벤이 그러하고 슈베르트는 더 큰 시련으로 시험하셨다. 빨지 않아 냄새나고 구겨진 코트에 팽팽도는 안경을 낀 지독한 근시의 촌티 나는 음악가로 살게 하시면서 그 안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흠모하는 음악적 재능을 허락하심으로써, 가난한 천재가 스스로를 소진시켜 가며 천재성을 입증하도록 하였다. 서른한 살에 산화해 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절한 삶, 그럼에도 그의 생에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친구다.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의 밤'이라는 뜻의 이 클럽은 그의 늙은 친구 '미하엘 포글'이 슈베르트를 위해 만들었다. 슈베르트의 곡들이 연주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 슈베르티아데에서 포글은 그의 등을 토닥토닥,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송어>를 빚어냈고 그가 이른 나이에 <겨울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함께 했다. 영혼의 벗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의 삶에 머무는 유일한 온기는 아니었기를. 이런 서사 때문일까, 슈베르트의 음악은 <송어>처럼 발랄하고 서정적인 곡조차도 그 안에 애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햇살 강한 어느 날 시냇가에 앉아 듣게 되면 송어의 자유로움이 온전히 전해지려나.


술주정, 도박, 결투에 법정소송 등 천하의 난봉꾼에 사고뭉치의 천재 음악가에서 인류의 문화유산급 작품 <메시아>로 새롭게 태어난 음악의 어머니 헨델, 노숙자 같은 거리 음악가 생활을 하면서도 오직 성실함과 유머로 세상을 감동시키고 후대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며 모차르트, 베토벤 등 천재들을 제자 삼았던 파파 하이든,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처럼 신의 은총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 35년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 개의 대작들을 남기며 인기와 부를 누리기도 했지만 지독한 가난과 병 속에서 비참하게 떠난 천운 속 비운의 천재 모차르트, 30년 동안 난청에 시달리면서도 "포기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은 것이고 시작은 아무리 늦어도 빠른 것이다."라는 말을 삶으로 증명해 냈고, 청력을 완전히 잃은 뒤에도 인류 사랑의 대 서사시 <합창교향곡>을 완성한 불굴의 인간 승리 베토벤, 현대인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아름다운 음악들을 작곡했지만 정작 자신은 우울증으로 희생되었던 음악가, 오직 사랑의 힘으로 슬픈 운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긍정의 아이콘 슈만, 베토벤의 작품을 접하고 이제 더 이상의 교향곡 작곡은 무의미하다며 절필을 선언했지만, 결국 베토벤의 후예로 인정받으며 진정한 교향곡 작곡가가 된 전설의 음악가 브람스(본문 P5, 쪽)


17~19세기를 아우르는 우리의 천재 음악가들의 삶을 조단조단 들여다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음악가들의 초대>라는 귀호강 프로젝트에 탑승하여 내 삶에 음악이 똬리를 트는 계기를 열었다.


그 옛날 글도 없던 시절에도 우리 인류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림은 굴이나 바위에 남긴 흔적으로 그 역사를 짐작할 수 있지만 소리는 무형의 자원이라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벽화에 그려진 하프, 리라, 피리 등을 통해 그 시대의 음악을 유추하고 문헌에 기록된 피타고라의 음계이론이라던가 그리스 로마시대의 비극시인 희극 시인, 코러스 등으로 음악을 사랑했던 오랜 역사를 가늠한다.

인류의 음악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져 노래로 전승되던 음악들은 악보로 기록되고 1877년 미국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함으로써 드디어 소리도 보존이 가능해졌다. 위대한 도약이다. 그로부터 100년 후, 1978년 필립스 사가 'CD'를 제작하면서 '폰 캬라얀'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담을 수 있는 규격을 마련했다고 한다. 74분, 합창을 담아낼 수 있는 용량이라, 카세트테이프 세대인 내가 CD를 처음 영접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노력과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오늘날의 음악시장, 우린 지금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카세트테이프도 CD도 하물며 요즘은 USB도 사족이다. 핸드폰 안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 꿈틀거리고 어디에나 아름다운 선율들이 춤을 춘다. 감사한 일이다. 기술이 음악의 생명력을 확장시켜 주는 요즘, 귀만 열어놓으면 음악은 저절로 노래를 한다.


천재였는지 피땀의 결실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진짜 보석은 상처를 이겨낸다는 작가의 한 줄을 가슴에 새길 뿐. 뜨거운 피땀이 내재된 천재성을 깨운 것이리라.


가난한 재능으로 살아내야 하는 세월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귀도 가난 소리도 가난, 음악에는 젬병이라 초등교사로서 음악 수업이 든 날이면 출근도 싫었다. 만회해 보고자 피아노도 기웃거려 보고 하모니카도 잠깐 수강했지만 길이 아니라는 자책만이. 피땀으로도 타고난 무지랭이 박자감은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너졌다. 피와 살을 태우고서야 천재성이 살포시 고개 내미는 것을 피와 살을 태우태워보기돋 전에 무릎을 끓었다. 느슨했다는 반성과 더불어 나와 함께한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깊다. 다행이 책임감은 털어냈으니 내 귀의 충만감을 위해서는 뒤늦은 노력을 기울여 봐야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나. 친절하고 따뜻한 파파 하이든의 음악실 문턱이 좀 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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