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 / 정세헌 / 학고재
미술관을 즐겨 찾는다. 걷는 길목에 미술관이 있으면 꾸역꾸역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는 바가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혼신을 다해 그리던 그 순간, 그 몰입과 희열의 시간에 서 있는 듯 내 안에 묵직한 게 차오른다. 일종의 '스탕달 증후군'이 아닐까 싶다.
딸이 대학생이었을 때 가족 여행으로 스페인의 '레이나 소피아미술관'에 갔었다.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방을 홀로 지키고 서 있던 '게르니카' , 말을 잃은 듯 조용한 관람객들 사이에 올곧게 서 있는 딸을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자꾸만 얼굴을 훔치고 있다. 도롱도 롱도로록 우는거야?, 스산한 바람 한 줄이 심장을 가격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울기까지? 스페인 내전의 참상에 대한 책이라도 읽은 걸까. 다가가 왜 울었냐고 물으니 그냥 눈물이 나왔단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선 몰랐던 눈치다. 그럴 수 있나?
여행 내내 '악어의 눈물'로 조롱당하던 딸이 어느 날 '스탕달 신드롬'을 물었다. 감성의 콘크리트라는 거친 말로 우리를 다그치며 예술 감수성도 없이 미술관을 출입하느냐며 반격의 일침을 날렸다. 듣고 보니 간간히 나도 경험했던 감정이었다. 눈물까진 아니었지만 제주 오름 작가, 김영갑의 사진전시 앞에서 몽롱하고 아련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전율을 느꼈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어휘 목록에 단단히 담아둬야겠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역사적 명화를 감상할 때 강렬한 예술적 감동을 느껴 가슴 두근거림, 현기증, 어지러움, 호흡 곤란, 심하면 환각이나 공황 증상까지 겪는 일시적 정신·신체적 이상 현상입니다. 이는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던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 등을 보며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경험을 저서 《나폴리와 피렌체: 밀라노에서 레기오까지의 여행》에 남긴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탕달 아저씨가 한국화를 대면하면 어떨까,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빨리 뛸까?
좋은 작품들이 비행기 타고 날아오면 찾아가 감사한 마음으로 직관하고 수장고에 모셔져 있던 우리의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오원 장경업 선생 등 특히, 간송 미술관이 부르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서 마음에 쉼을 담아 온다. 미술관 나들이는 언제나 좋다. 그러나 누군가 과학적인 도구를 들고 내가 느끼는 전율을 측정한다면 그 수치는 사뭇 다를 것이다. 간송 미술관은 좀 특별하지만 일반 한국화 전시장에서는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이 가속적으로 짧아지는 걸 느낀다. 뒷부분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다. 관람 후엔 한 작품이라도 마음에 깊이 새기자는 마음으로 '내 집에 소장하고 싶은 작품' 찾기를 습관처럼 하는데 한국화 관람 후는 쉽지가 않다.
세상은 변해서 K-POP으로 대변되는 K-CULTURE, 한국 문화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훌륭해져서 우리 것, 우리 노래. 우리 그림이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왜. 한국화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건지!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일까? 어릴 적 아빠 따라갔던 식당에서도 봤고 미팅하던 찻집에서도 상대와의 서먹함을 대신해 벽마다 걸려있는 산수화에 눈길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산수화 한 점 걸려 있어야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법이라도 있었던 건지 나의 기억 속 모든 장소에는 한국화가 필수로 걸려 있었다. 세월을 거치며 하나 둘 떼어져서는 기품 있는 어르신 댁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겐 먼지 쌓인 식당의 소품일 뿐 그 신선한 산수에 깊은 눈길을 건넨 기억이 없다. 좋지만 궁금하지 않은?
고민이 컸다. 한데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 작가는 우리 옛 그림 중에는 보는 그림이면서 또한 읽는 그림이 있다는 말로써 그림 읽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우리의 옛 그림은 서화동체((書畫同體), 그림과 글씨는 같은 몸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림을 잘 읽어야 한단다.
한국화는 여백의 미를 살려서 붓의 선에 화가의 정신과 감정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며, 산, 물, 나무, 새, 꽃 같은 자연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조화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데 매화 → 절개 / 소나무 → 장수, 굳은 의지/ 학 → 장수, 고결함 등을 의미한다. 그림에 담긴 이런 상징적 표현들을 알고 보니 한국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조금씩 들렸다.
'위수조어도'는 심산유곡에 선비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양반의 한량 놀음인가 싶었는데 웬걸, 틀렸다. 때가 아니라고 여겨지면 강태공처럼 조용히 숨어 살다가 때가 차면 나가고 또한 물러 설 줄 알아야 한다는 옛 선비들의 선비 정신을 그림에 담고 있다. 그림 속 상징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기초지식이 없이는 그 상징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부분이 한국화를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던 듯하다.
상징을 사용한 방법들을 살펴보자면,
1. 중국어 발음과의 유사성으로 만들어진 상징이다.
물고기(魚, 어) → 여유(餘) / 쥐(蝠, 복) → 복(福) / 사슴(鹿, 록) → 녹봉(祿) 같은 형식으로. 여유를 이야기하고 싶으면 물고기를, 복 받는 한 해가 되라는 세화에는 쥐 그림을 그렸다니 중국어와 연이 없는 이 시대엔 그 상징이 난해할 수밖에 없다.
2. 옛 문헌이나 고사를 인용한 경우도 있다.
도연명의 시에서 유래한 국화를 → 은둔의 삶에 빗대는 것처럼, 매화 → 절개와 지조, 연꽃 → 청렴의 의미로 그림에 담았다.
3. 자연의 생태적 특징을 활용하여 식물 동물의 실제 특징에서 의미를 만들었다.
소나무 → 늘 푸름 → 장수 / 거북 → 오래 삶 → 장수 / 매미 → 허물 벗음 → 재생, 가장 보편적이면서 직관적인 상징이라 이해가 쉽다.
4. 수를 이용하여 그 의미를 담아 그렸다.
10 → 완전함 / 5 → 오복 / 3 → 삼재
5. 여러 사물을 함께 그려 의미를 강화했다.
까치 + 호랑이 → 새해 길상 / 모란 + 나비 → 부귀와 사랑 / 연꽃 + 물고기 → 풍요
6. 색에도 상징을 담았다.
빨강 → 길상, 기쁨 / 금색 → 부귀 / 흰색 → 순수
참 좋은 책이다. 진즉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한국화의 대면이 훨씬 더 유쾌하였으리라. 본 것을 그리는 서양화와는 다르게 심상을 그리는 한국화를 같은 시선으로 감상하려니 어렵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보이는 게 다르다. 만수무강을, 과거급제를, 부부백년해로를, 그린 이의 마음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기에 또한 안타깝다. 이 도서는 12세 전후를 대상로 쓰인 책인데 글쎄다, 청소년 중에 이 책으로 몰입 독서를 할 수 있는 독자층이 얼마나 될까. 오랜 시간을 무례한 관람자로 전전했던 나처럼 많은 세월을 흘러 보내고서야 집어드는 책이 될까 걱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는 책, 옆구리에 이 책을 끼고 시립 미술관을 찾는다면 제대로 숨은 그림 찾기가 될 것이다. 해지는 것도 모를까 걱정이다.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도 함께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