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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Dec 01. 2020

미션 5 얼마면 되는데?

(행복해지려면)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한 학습지에 제시된 초등학생 토론 주제이다. 학습지다 보니 친절하게도 찬성측, 반대측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찬성측의 주장부터 제시하자면 첫째,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를 마련하려면 돈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둘째, 돈이 있으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므로 삶이 더욱 윤택해진다. 삶의 질은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셋째, 돈 문제로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공부, 사업, 기부 등을 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하며 행복해질 것이다. 반대측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도 많다. 건강, 지식, 걱정 없는 삶 등과 같은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둘째, 일정 소득이 넘으면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다.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더 많은 돈을 바라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되면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셋째, 돈을 버는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질병, 주변인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거나 여가생활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토론이 제대로 성사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돈이 많다’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집은 빠듯하게 대치동 학원들에 보내줄 돈은 있었다. 그치만 외고입시를 했던 나를 외고에 진학시킨 후 사교육까지 부담할 돈은 없었다. 외고 입시 원서를 한참 쓰고 있을 때 엄마가 조용히 불러 “조금만 양보해줘.” 라고 했을 때 철없게도 화를 내버렸다. 또, 대학을 졸업할 무렵 미국 간호사가 되고 싶다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미국간호사 도전욕구는 며칠 동안 부모님의 골머리를 아프게 했다. 10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 스스로 접었다. 아무리 현실점검을 해도 다 큰 딸의 취업을 앞두고 생각지도 못했던 금전적 출혈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우선되었다. 이처럼 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이해와 타협을 불러온다.


  3교대 간호사, 첫 사회생활 치고는 또래들보다는 확연히 많은 월급이었다. 많게는 두 배 가까이 차이나기도 했다. 그 월급의 60~70퍼센트는 저축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쓸 용돈도 여유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살게.” 가 습관이 되었고 그런 것들이 쌓여 자연스레 씀씀이는 커졌다. 나의 대중교통은 택시가 되었고 옷장은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로 꽉 차터지기 직전이었으며 외식을 하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고정소득이 있으니 매달 카드값은 무난히 갚아나갔다. 점점 현금없는 삶을 살게 되어 어떤 달은 병동회비 3만원을 내고나니 잔액이 오천원도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말로는 매순간 반성했다. “다음 달은 꼭 아껴써야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오히려 ‘에라 모르겠다’하며 저축 비율을 줄이기 시작했다. 돈을 더 쓰기 위해서였다. 돈을 쓰면서 항상 합리화를 했다. “이만큼 고생하는데 당연히 써도 돼.” 한마디로 ㅅㅂ비용(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돈을 일컫는 용어. 인터넷 커뮤니티로부터 유행한 말. 예를 들어 홧김에 치킨시키기 등) 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습관은 일을 쉬며 고정소득이 사라졌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열심히 저축해놓은 내 피같은 돈은 그렇게 무의미한 소비에 희생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드회사의 전화는 나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다. “고객님, 오늘 밤 11시까지 납부되지 않으면 신용 심사에 들어가서 내일부터는 카드 이용이 어려우실 수 있으세요.” 남에게 천원 한 장 빌리는 것도 어려워 돈이 없으면 차라리 밥을 굶고 다녔던 나에게 이보다 더 끔찍한 소식은 없었다. 특히나 집에서 돈이 없는 티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부모님에게 부족한 돈을 빌릴 수는 없었다. 친한 친구들의 경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그들의 월급 날짜까지 알고 있지만 도무지 지금 나의 카드값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메세지를 카톡창에 쳤지만 보내기 버튼을 터치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하면서 혀를 깨물어봤다. 전날 돼지국밥을 먹다가 데인 혓바닥만 아파 바로 그만둬버렸다. 한참을 망설이고 메모장에 썼다 지웠다를 계속하며 엄청난 용기를 장전하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대부분 친구들의 현금사정은 나와 비슷했다. 미안하다며 텅 빈 통장 잔고 화면을 캡쳐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비상금 통장을 꺼내 “다음에 커피 한 잔  사”라며 결코 작지 않은 돈을 바로 송금해줬다. 너무 고마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다 났다. 또다시 반성을 했다. “신용카드를 잘라 버리리라.”      


  “100일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라는 영화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라고, IT 회사도 공동 운영, 사는 집도 아랫집, 윗집으로 이웃사촌인 ‘폴’과 ‘토니’는 둘도 없는 죽마고우다. 스마트폰과 아마존(쇼핑 사이트) 없이는 못 사는 소비왕 ‘폴’과 자신감과 발모약 없이는 못 사는 자기관리왕 ‘토니’가 1,400만 유로라는 빅딜 성사 후의 축하 파티에서 거하게 취해 신경전을 벌이다가 홧김에 황당한 내기를 하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린 후, 하루에 한 가지 물건을 돌려받으며 100일을 버텨야 하는 ‘100일 챌린지’를 하게 된다. 극과 극 성격의 두 친구가 죽자고 덤비는 기상천외 100일 챌린지가 시작되고 그들은 진짜 소비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앞서 말했듯 ㅅㅂ비용이든가 잘못된 소비습관에 물든 나는 돈으로 행복을 사려고 했다. 모든 일에 ‘왜?’ 라는 질문은 피곤하지만 지나치게 의미 없이 돈을 쓰던 지난날들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이 말한다. “우리 모두는 영혼에 구멍이 있어. 우리 모두 그 빈곳을 채우려하지. 돈, 관심, 물건, 사람으로. 근데 다 개소리야.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할지도 몰라. 그럼 서로 상처주지 않겠지. 우린 모두 불완전하니까 함께 일 수 있어.”     


  스스로만의 프로젝트로 소비를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소확행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험을 의미하는 2018년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이다.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 원래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에서 쓰인 말로, 갓 구운 빵 손으로 찢어 먹을 대,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소확행은 정말 별거 아니다. 관점을 바꿔 사소한 것에서 행복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중이었다. 한강 위를 지나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은 잠시 생각을 멈추고 바깥 풍경을 한 번씩 보며 리프레시를 하던 그 때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도 많이 피곤하셨죠?" 낯선 멘트에 매일 피부인 것 마냥 귀에 꽂고 다니던 이어폰을 뺄 수 밖에 없었다. "내일은 분명히 잘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이만큼 한 것도 충분히 잘 하셨으니까요. 근심과 걱정 툭툭 던저버리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기관사님의 위로에 눈물이 핑 돌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어폰을 귀에서 빼 손에 들고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어떤 것을 느끼지 않았으려나 한다. 1분도 걸리지 않았을 낯선이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갓 20살이 넘었을 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용돈과 알바비로 지낼 때가 있었다. 괜히 밤을 새고 싶을 나이였다. 아무 이유 없이 친구와 전화 통화로 수다를 떨며 밤을 새고 새벽 다섯시에 만나 맥도날드에 갔다. 당시 맥모닝 세트는 약 3000원 정도 했었다. 우리는 동전까지 탈탈 모아서 만났지만 웃프게도(웃기고 슬프게도) 둘이 합쳐 그 천원 세 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따. 감자튀김을 하나씩 시켜놓고 별 볼일 없는 수다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년은  지난 지금도 그 친구와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우리 이제 삼천원은 있잖아. 괜찮아!" 삼천원도 없어 그 간식하나를 못 사먹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삼만원도 있고, 삼십만원도 있는 멋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삼천원이 없던 날도 읏으며 지나쳐보냈는데 못이길게 뭐가 있겠냐! 이거다. 모두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의 나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자란 것 같은 그런 경험 말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소비라고 한다면 존중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신이 소비에서 행복을 찾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나의 영혼의 구멍을 조금은 의미있게 채워지는 소비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의 행복은 얼마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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