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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Dec 03. 2020

미션 7 비밀일기 한 자락

  잠들기 전 괜히 휴대폰 사진첩을 쭈욱 내렸다 올렸다 하며 나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의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소중한 순간들을 펼쳐놓으려 한다. 당신도 나와 함께 당신의 것들을 여기에 펼치며 잠시나마 그 소중한 무엇들이 당신 가슴을 뛰게 함을 알게되었으면 한다. 우선 그 기억들을 매번 소환시켜 주는 '사진'이라는 존재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보라카이의 바다는 투명하다. 에메랄드 빛?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가만히 보고있자면 투명한 바다에 비친 하늘의 색깔인 것 같다. 밤에는 어둡게 보이니 이런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 한참이던 어느 날 갑자기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라카이 가자. 다음주에.” “응? ” “이거 진짜 싸게 가는건데 자리가 생겼대.” 

“언니 그럼 나 엄마한테 물어볼게.” 라는 통화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보라카이 가도돼? 내가 용돈 모은거랑 엄마가 쪼금만 도와줄 수 있어? 근데 안되면 안된다고 말해줘.” 두근두근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5초도 기다리지 않은 것 같은데 엄마는 “그래.” 라고 답했다. 와, 날아갈 것 같았다.      


  보라카이가 필리핀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떤 섬인지, 어떤 바다인지, 어떤 하늘인지모르고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당장 며칠 후 떠날 옷을 챙기고 콧노래를 부르다보니 그 맑은 바다에 도착해있었다. 그 천국같은 곳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1위로 남은 장관은 밤바다에 쏟아지던 별밭이다. 별의 세상에 침입한 것 처럼 압도되었 모래위의 발소리를 더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식들 다 키운 엄마, 아빠의 첫 해외 여행길, 공항 버스를 기다리며 행복한 미소를 담았다. 엄마는 55년을 살며 고향인 제주도 외에는 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여권도 처음 만들었다. 여권사진은 좀 무섭게 나오긴 했지만 여권이 생겼다는게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닌가보다. 옆에는 멋쩍은 듯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아빠가 있다. 해외라고는 30년 전 일본, 2년 전 중국 출장 뿐이었지만 공항부심, 여권부심은 엄청났다. 부부동반 모임으로 떠나던 베트남 출국길, 그렇게 설렘 가득한 두 꽃중년을 보내고선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그건 아마도 보통수저 나의 여행에는 도금이라도 시켜줬던 그들에게 고마워서였던 것 같다.      


  잠실 종합운동장에 푸에르자부르타 공연을 보러 갔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모티브로 한다는 공연예술이다. 한껏 꾸미고 간 공연장이었다. 공연이 마지막에 달하고 천장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던 공간이 있었다. 망설임 없었다. 친구에게 “가자!”고 말했고 친구는 끼리끼리라고 대답보다도 먼저 본인이 그 공연장 물폭탄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몇 분 동안이나 귀가 터질듯한 음악 속에서 온 몸을 흠뻑 적셨다. 그리고선 지하철을 타야했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나는 페스티벌이고, 콘서트고 많이 다녀봤지만 당신에게 생동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강력 추천하겠다. 다음 내한 공연을 꼭 가보시라. 아,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넋을 놓고 입을 다물수 없어 침이 흐를지도 모른다.      


  단풍이 진한 어느 가을 날, 친한 지인과 함께 청계산을 등산했다. 극한을 경험해보자며 악마의 코스를 선택했다. 집근처의 동산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귀여운 산 경험밖에 없는지라 지레 겁을 먹고 올라갔다. 또 넉살을 부려 내려오는 등산객 아저씨에게 “정상이 많이 남았나요?”하고 질문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엄청 멀어. 땅만 보고 가. 계단만 보고. 그럼 도착해.” 라고 하시며 유쾌한 웃음을 남기고는 빠른 속도로 내려가셨다. 숨이 턱까지 부치고 다리는 한없이 후들후들거렸다. 그렇게 아저씨 말대로 바닥만 보고 가다보니 어느 새 정상이 가까워졌다. 헬기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헬기장에서 앞으로 더 나아갔는데 내리막길이 나왔다. 분명이 정상에 가려면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 길이 맞나? 여기밖에 길이 없으니까 맞겠지?” 라는 대화를 나누며 계속 가다보니 다시 오르막 길이 시작되었다. 정상 근처에도 내리막길은 있었다. 만약 당신의 지금이 인생의 내리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산에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 정상 근처의 내리막을 한 번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비어있는 임종실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기억들, 감정들이 숨쉬고 있어 잊기가 힘든 장소이다. 보고 있자면 귓가에 통곡소리라도 들리는 듯하다. 그 곳에서 삶의 마지막 힘겨운 도전을 하던 환자들의 모습들이 영화 필름이 되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죽음과의 싸움으로 전쟁의 공기가 가득한 그 무섭고도 아찔한 곳을 스쳐갔던 수 많은 환자들의 영면을 기린다. 더 이상은 아픔이 없길, 사연이 없길, 술이라곤 모르고 살길, 자식들은 모두 효자 효녀이길, 부모에게 있어 먼저 떠나는 자식이 되지 않길 그렇게 여러모로 오지랖을 부려본다.     

 기억조각들은 가까스로 뭉쳐 행복이라는 것을 선물한다. 당신이 미치도록 소환하고 싶은 그 순간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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