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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Apr 15. 2022

우리는 왜 공존할 수 없을까 ?

  동물학대 기사나 뉴스는 흔히 접할 수 있다. "아이고,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어." 정도의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엊그제, 제주시 한림읍 입과 발이 꽁꽁 묶인, 그것도 포박하듯 다리를 등 뒤로 묶은 채 버려놓은, 또 발견자를 또랑또랑하게 쳐다보는 눈빛은 늦은 밤 나를 소리내 엉엉 울게 만들었다.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른 못된 짓에 슬픔으로 잠도 잘 들지 못했다.


  우리의 공존 여부에 대한 생각의 시작은 작년 가을 생활치료센터에서 근무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지가 굉장히 넓었으며 풀숲이 펼쳐진 어느 지방, 상황실 앞에는 개냥이 몇마리, 어느 날부터 나타난 몸집이 조금 큰 강아지 한 마리가 일하는 공무원, 의료진, 경찰, 군인과 친해졌다. 사람은 동물에게 줄 먹이와 간식을 사비로 주문해 챙겨주기도 했으며 서먹하기 짝이 없던 근무자들은 '얘는 이름이 뭐에요?' 라는 말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곤 했다. 그들은 이름만 해도 열댓개는 되었다. 내가 지어준 이름만 해도 '브라운', '차콜' 이었으니 말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내가 그들에게 '츄르' 라 하는 간식을 사다 먹이고 매일 사진을 찍고 만지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이 웅성웅성했다. 유기동물센터에서 그들을 잡으러 왔다는 것이다. 이름 모를 어느 사람의 신고로 여기가 집이었던, 우리로 살아가던 고양이와 강아지가 불안한 예후를 가진 곳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에 너무 화가났다. 마음속으로 '제발 잡히지 말고 멀리 도망쳐!' 하고 외쳤지만 간식에 약한 아이들은 모두 케이지 안에 갇혀지고 말았다. 쉬는시간, "그럼 내가 키울게, 잡아가지마" 라는 근무자도 나왔지만 순한 아이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사무실에 반절은 남아있는 사료를 보고 결국은 울었다. 

혹여 깰까봐서 잔뜩 줌을 당겨 찰칵

  

  현재 나의 숙소 바로 앞에는 조랑말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당근도 주고 또 이름도 지어줬다. 조랑말들이 요새 기분이 좋은지 잠깐씩 산책을 하다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불편하게 보여져버려 말들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쩌면 침입자, 불청객은 나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천 시내의 시장 골목에서 나의 소중한 믹스견 "체리"를 만났다.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고 너무 많아 잘 키울 사람이 키워줬으면 해서 시장에 데리고 나왔다는 할아버지가 색시가 잘 키울 것 같으니 데려가 라며 나를 흔들어 놨다. 어릴적부터 오래 키웠던 강아지들을 모두 하늘나라로 보내고 절대로 동물과 함께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난데 체리를 보는 순간 다짐이 무너졌다. 이렇게 또 나는 동물의 보호자가 되면서 내 보호를 받고 잇는 한 집단이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는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라고 생각하기엔 세상엔 오지랖을 좀 더 부려야 할 일들이 아직 많다. 



체리와의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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