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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랑 Mar 08. 2023

마케팅 찐도사

트렌드 마케팅 아이디어

외식문화플랫폼을 기획하는 H기획은 대흥역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2시 지하 1층의 세미나룸은 불황을 뚫고 ‘되는 사업’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 날의 사업 모델은 다섯가지였다. 디지털 트렌드나 이종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아이템이었다. 맨 처음 소개된 ‘룸의 정석’은 태블릿PC를 이용해 주문을 받고 부가 서비스나 혜택을 주는 모델이다. 가령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듣고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안주를 걸고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논다노래방'은 랭킹에 진입한 아마추어 노래 고수들과 자신의 노래실력을 동시에 겨룬다. 상위에 랭크되는 동시에 경품이 지급된다. 방송국의 노래 경연이 노래방으로 옮겨온 형국이다. 이종결합의 아이디어였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큰 닭을 사용해서 로컬치킨의 강자로 자리잡은 삼덕통닭, 고니가 든 칼국수에 제주산 돼지수육을 더해 식사와 술을 함께 할 수 있는 제주고니칼국수도 주당들의 발걸음을 당길 듯했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을 마케팅의 기본은 ‘차별화’고 ‘남다름’이다. 두 시간 가량의 발표회에서 사업별 담당PM들은 개성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영상과 원고는 거칠었으나 목소리는 패기 넘쳤다. 시간에 몰려 발표가 생략된 한 담당자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를 맡은 한경민 대표(56)는 말수가 적당했고 어조는 단호했다. 사업을 검토 중인 고객들과의 질의응답 때는 유머를 곁들였는데 2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내고 많은 브랜드를 성공시킨 관록이 묻어났다. 이런 자리는 확신을 얻기 위한 질문과 확신을 주기 위한 대답이 미심쩍은 분위기를 만들기 마련이다. 누구도 금전등록기가 얼마나 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는 데 말아먹은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또 기본적인 품질 관리, 매장 인테리어, 마케팅 교육 등 초기 세팅은 책임지지만 자발적인 경쟁력으로 끌고 나가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뒷자리에 착석한 점주들의 입을 통해 소개한 사업들의 현재 매출을 알렸다. 담백하되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신사업 발표회는 H기획의 글로벌 진출 현황과 추진 계획을 5분 정도 보태고 끝마쳤다.

마케팅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다. 자동차나 반도체를 만드는 거대기업들의 싸움터이기도 하지만 골목마다 어깨를 맞대고 포진한 상인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짬짜면이나 셀카봉을 만든 사람을 떠올려보라. 이들의 사활에도 트렌드와 발상력이 여지없이 작동한다. H기획은 트렌드에 아이디어를 더한 마케팅으로 골목상권을 살리고 있다. H기획은 당신의 집 앞에 자리잡은 봉구비어와 청년다방을 만든 장본인이다. 쓸데없는 외래어나 맥주상표 그대로가 아니라 친근한 우리 말로 만든 이름으로 감정적 유대감을 일거에 확보하고 자기 맘대로 잘라먹는 30cm 떡볶이를 고안하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한 곳에서 마시게 했다. 또 하나의 대박모델인 ‘포차끝판왕’이 즐거움(Fun)과 문화(Culture)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점포수를 해외까지 늘려가듯 이들은 트렌드를 읽어(Trend reading), 트렌드의 선두(Trend making)에 서려고 했다.

이런 마케팅 고수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와 함께 수렴적 사고(conversion thinking)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소비자의 욕구에 대응하는 해결 방안을 양적으로 나열한 뒤 그 중에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방법을 추려내는 것이다. 물론 최종 검증은 차별성과 공감대다. 뭔가 색다른데 수긍이 가는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가능성이 있다. 가장 중요한 체크리스트는 트렌드다. 먹고살 만하니까 짬짜면이고 SNS가 일상화되니까 셀카봉이 뜬 것이다. 아무리 특별하고 대중적인 호감도를 얻는다 해도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사람들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 욕구가 밀집된 용광로를 주목해라. 관광콘텐츠가 미식브랜드를 중심으로 퍼져가는 것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트렌드 때문이다. 계단과 정원에 거울을 설치하고 옥상에 근사한 루프탑을 마련해야 한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의식주와 건강을 챙기는 사업은 불황을 모를 것이다. 분절된 세상의 반동으로 태어난 반려견, 반려묘, 반려식물의 호황도 마찬가지다.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다. 백화점의 중앙에 거대한 대형식물관을 바벨탑처럼 세우고 사방팔방에 널찍한 대화공간을 마련한 더현대백화점도 쇼핑 행태의 변화를 관찰하고 반영한 결과다.


H기획이 내놓은 ‘논다노래방’도 경연(Battle)을 즐겨하는 우리네 특성에 디지털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결합시킨 발상이다. 향후엔 기존의 케이블방송국과 공동 마케팅을 펼쳐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H기획의 진단과 처방이 불황에 허덕이는 중소상인들의 혈로를 뚫어주는 묘책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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