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과 평화의 외국어
중국어를 배운 이유가 나의 '사사로운 사랑'이라는 감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내가 프랑스어를 배우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함을 느끼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는 '범인류적 사랑' 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운다. 나의 이런 소망이 언젠가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닿기를 기도하면서.
안정적 직업을 갖고계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며 어려서부터 '나도 나중에 커서 우리 부모님만큼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규정한 안정적 직업'이라는 범주 내에서 나의 꿈을 찾으려했고, 그 결과 난 교사 혹은 공무원을 내 꿈으로 착각하고 이것 만을 바라보며 10대 학창시절을 보냈다.
무엇을 할 지 몰라 방황한 1년,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도전한 교환학생을 통한 해외 거주로 나는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는 시간을 보낸다. 한국과 전혀 다른 기후, 문화, 분위기 등이 내겐 신선했고, 처음 내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왠지 모르게 충만감을 느꼈고, 행복함이 내 가슴을 채웠다.
이전에 미리 한국에서 수강신청했던 과목들은 모두 드롭되고 수정되어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야 되었지만 단 한 과목만은 내가 몇 개월 전에 골랐던 것을 수강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Gender,Culture and Society>. 사실 이 강의를 골랐던 이유는 단순한다. 학교 수업으로는 흔치 않은 '젠더'라는 것을 학문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더군다나 '말레이시아처럼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국가에서 배우는 젠더라는 것은 보수적일까?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라는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강의는 나의 흥미와 호기심을 채우는 그런 즐거운 성격의 강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 강의를 통하여 내가 이전에는 지니고 있지 못했던 '세상을 이해하는 안목'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주변의 많은 국가들을 여행하며 책과 영화라는 필터가 아닌, 내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았고, 내 눈동자에 비친 세계 곳곳의 모든 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교환학생과 중국 어학연수 생활,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레 중국에서 강제 격리가 된 2주동안 나는 2주 가량을 혼자 지내며 책을 읽거나 내 스스로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내 모든 경험에 지식이 더해져 '나의 진정한 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첫 단추를 국제기구에의 입사로 설정했다.
국제기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를 제외하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있다. 사람들은 스페인어가 앞으로 더 유망하다며 이 언어를 추천해주었지만 개발도상국이 처한 상황과 실태를 직시하고, 빈곤의 대물림 속에서 노력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들을 돕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이자 사명으로 삼은만큼 빈곤 문제가 가장 심각한 대륙인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내 신념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한채 아프리카에서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프랑스어를 나의 제3외국어로 선택하였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학교 수업, 과제, 또 다른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다 보면 이 시간은 밀리게 되고, 자책감이 나를 휩쓴다. 나의 프랑스어는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미래에 그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또 그들에 공감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떠 일기를 간단히 쓰고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한다. 이는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름답고 우아한 언어로 손꼽히는 '프랑스어'. 부드러운 발음에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대명사인 프랑스어이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여 어린 딸을 아버지의 나이 또는 그 이상의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조혼문제, 물이 없어서 맨발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걸어가 흙탕물을 마시며 연명하는 기아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빈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 또한 프랑스어이다. 한 언어에 담겨있는 상반된 분위기, 모순적인 이 상황은 지구 구성원 모두가 같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이에 대응하여 나는 앞장서서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하고 싶고, 이를 나의 꿈이자 현실에 맞선 사명으로 받아들인만큼 더욱 이들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