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나이 먹어 갈수록 만나는 사람을 줄여가야 한다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그 사람이 누구이건 그 만의 곡절과 발자취가 있다. 그것에는 다른 사람이 쉽게 폄하하거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진중함이 있다. 나는 그들의 삶 속에서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책에 비견될 만한 깨우침을 얻는다.
모처럼 전기기사 공부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나보다는 다섯 살 이상 연장자라 형님처럼 대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이 기사 자격시험공부 중이어서 만남을 가질 수 없다가, 합격 소식을 전하며 한 턱을 쏘겠다고 해서 만남이 성사되었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고 일 년 만에 쾌거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칠십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문 자격증에 맞는 자리에 취직하게 되었다고 했다.
거의 반년여 만에 만남인 데다가 좋은 일이 겹쳐서 만들어진 자리라 모두 허리띠를 풀었다. 만날 때마다 술을 많이 자제하던 큰 형님마저 원샷을 하니, 마냥 잔을 놓고 뜸을 들일 수 없었다. 자리를 옮겨가며 술도 많이 먹게 되었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전 모임에서 나누었던 대화보다 훨씬 더 깊이와 무게가 더해졌다. 전에는 자신의 위신에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라는 한계가 있었다면, 이번부터는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낸 솔직함이 가미되었다.
일 년 동안 오로지 합격 만을 그리면서, 집에서 홀로 책과 씨름한 스토리는 뭔가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전 보다 조건이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해서 시작했었다. 이제 그만하라는 부인의 권고도 못 들은 척,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당당히 취직에 성공한 큰 형님은 그 간 마음고생이 많았음을 털어놨다. 짧게 몇 군데 취직해서 근무는 했었는데, 사수 격인 사람들의 텃세부림으로 못 견디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이도 많은 데다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새로 취직한 곳은 윗사람이 신뢰를 해주어서 근무할 맛이 날 것 같다고 좋아했다.
내가 이 년 경력만 채우면 된다며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꾸준히 '평생현역'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이번에 취직한 큰 형님에게 "왜 자격증을 계속 따려고 하세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답이 "난 앞에 이루어야 할 뭐가 있어야, 살아있는 것 같아."였다. 나는 이 말에 큰 울림을 받았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열심히 산다는 것'의 전형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 여유 있을 때 떠올려 보는 생각이 있다. 지금 보다 나이가 더 들면, 무엇이 문제로 다가올까? 첫 번째는 건강일 것 같다. 세계의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통계에서도 보듯, 지금부터는 건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경제적인 여유이다. 그야말로 은퇴 이후에는 아내의 눈치만 봐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쉽게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게 된다. 셋째는 소외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이 점점 없어져 가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만날 사람이 줄어들면서 외로움도 배가될 것 같다.
나는 이 세 가지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평생현역'으로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존재감을 느끼는 것과도 닿아있다. 우리는 언제 존재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할 일'이 있고, 내가 할 '역할'이 있을 때 느낄 수 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무엇이든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두 사람은 내가 우려스럽게 생각한 문제점을 진즉에 짚어 보고 우직하게 실천하면서, 이미 '평생현역'의 길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이번에 기사 자격증을 딴 형님은 벌써 직장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어쩌면 난 행운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살아낸 사람들의 딛고 난 큰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