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효과
월요일 아침, 봄 냄새가 달콤한 공원을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 잰걸음 하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어도 뿌듯하게 보낸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홀로 있는 아버지와 만남, 또 하루는 아내와 인천 나들이를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낸 시간에 비해 더 흐뭇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공원을 가로질러 오는 내내 미소를 머금은 채, 오늘 일어날 좋은 일들을 그려보고 있었다.
여느 때 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한 것 같아 느린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중간쯤 내려갔을 때, 계곡의 물소리를 들었다. 작년 여름 두 번이나 갔던 수락산 계곡에서 들은 그 소리였다. 건물에서 물소리는 대게 좋지 않은 징조다. 급하게 뛰어내려 가 보니, 냉방장치의 균열된 급수관이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꽤 경과된 듯, 물은 통로를 가득 메운 채 어디로 달려갈지 망설이고 있다. 가방을 등에 맨 채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인접한 식당의 사장은 입구를 수건과 신문지로 막고 사각쟁반으로 계속 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먼저 와있던 두 명의 관리요원들이 배관을 잠그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다. 오래된 건물이라 아래층 누수로 연결되면 어떤 후유증을 남길지 모른다. 요즘 계속 누수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어 왔던 터였다. 식당 사장에게 쟁반을 달라고 해서 청소용구 세척실로 물을 몰아넣었다. 고착된 급수관 밸브를 겨우 잠그니, 모두 바닥의 물을 제거하는데만 매달릴 수 있었다.
아래층 누수 피해를 확인하러 잠깐 내려갔다 온 사이, 관리요원과 식당 사장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관리요원이 식당 사장에게 엘리베이터에 물이 들어갈 것을 염려해서 더 이상 밀어내지 말라고 요구했는데, 식당 사장이 반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에게 엘리베이터는 관심 밖이고 오로지 식당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물을 빨아들이는 기계 소리를 뚫고 오가는 고성, 그 사이를 오가며 물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난장판'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 논 것 같았다.
급한 물은 정리된 듯해서 사무실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현장에 다시 가봤다. 웬걸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인접해 있던 전기 분전반 격실을 열어보니 물이 흥건 했다. 전기 케이블 통로로 쓰기 때문에 아래층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즉 물이 아래로 곧바로 흘러내릴 개연성이 많다는 말이다. 전기기사들과 아래층의 그 격실을 둘러봤다. 천우신조라고 해야 할까? 교묘하게 분전반은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서둘러 물기를 제거하고 건조하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 정리되고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부화뇌동한 것이 후회된다. 그저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데만 집중했었다. 전기 안전관리자라면, 조금 먼 거리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어야 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해야 했었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를 바라보며 느꼈다는 '조망효과'처럼, 멀리서 바라보면 그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무리에 섞여 좁은 곳만 바라보면 중요한 것을 읽어낼 수 없다. 큰 대가 치르지 않고 좋은 경험 쌓게 된 것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