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장기외유를 마치고 방금 무사귀환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괴롭혀 반항성 가출을 한 것 같아요. 이제 그만 괴롭히고 자유를 줘야 할 듯~~~~. 잘 돌아오도록 힘써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핸드폰 분실 40시간 만에 찾고 나서, 친구들에게 첫 번째로 보낸 문자다. 모임에 왔던 친구들이 결국 다 알아버려 결과를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찍은 문자였지만, 당시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핸드폰이 다시 품 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기쁨 보다, 그동안 혹사시킨 미안함 같은 희한한 감정이 표현되었다. 단지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성가시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었나 보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진해에서 있었다. 사관학교 가입교 훈련 때부터 만났으니까, 맺어온 인연도 45년째가 되어간다. 매번 서울에서만 모임을 갖다 보니, 진해에 있는 친구들이 참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몰려 내려가기로 했다. 제2의 고향 같은 진해에서 45년 지기와의 만남! 거기다 진해 특유의 도다리 세꼬시! 벌써 술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삼삼오오 몇 군데를 전전하다 숙소에 들어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핸드폰 분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기도 했고, 들렸던 장소만 확인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함이 잠 속으로 밀어 넣어 벼렸다.
선잠을 잔 듯 몽롱하게 아침을 맞았지만, 곧바로 핸드폰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어제 들린 집을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확인해 봐도 소재를 알고 있는 곳이 없었다. 급격히 분리 불안 증세가 몰려왔다. 당장 예매해 놓은 버스표 취소는 물론, 아내에게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가끔 눈에 보였던 공중전화는 다 어디로 숨었는지, 세상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다행히 길거리에서 어제 동행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 그의 전화로 아내와 통화하고 회사에 비상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었다.
진해에서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친구가 예매해 준 반좌석 반입석 기차로 서울로 출발했다. 서대구까지 앉아갈 수 있었지만, 서대구부터는 입석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었다. 정차하는 곳마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했고, 통화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강제로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기차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집에는 또 하나의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산은, 술에 대한 경계를 신신당부했던 아내의 짜증을 온몸으로 맞는 일이다. 그나마 핸드폰 소재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이 빨리 전해진 덕에, 예상보다 빨리 넘어갈 수 있었다.
다음 날, 고속버스 택배 편으로 받은 핸드폰을 대하니 반가움보다는 애처로움이 앞섰다. 많이 이용하며 괴롭힌 만큼, 잘 챙겨주고 간수했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막막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없어도 견딜 만한 내성이 덩달아 생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은 점차 차분해지면서, 다른 쪽으로 관심과 시선이 돌려지게 되는 현상을 체험했다. 비록 어려운 시간을 보냈더라도 반전의 기회가 되었다면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먼저 두 가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핸드폰 위치 고정이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핸드폰은 항상 그 위치여야 한다. 내가 핸드폰 위치로 와서 전화를 받던, 문자를 확인하기로 했다. 항상 손에 들고 있으면서 들여다보는 습관을 없애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잠자리에 들고 들어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어폰에서 반복되는 유튜브 쇼츠나 틱톡 소리를 들으며, 잠을 푹 잔 것도 영상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닌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하여 '사랑하는 만큼 거리두기'를 하기로 했다. 핸드폰에게는 자유시간을, 나에게는 유익한 시간을 더 주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