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상식 없는 사람이 되다

상식은 공통분모

by 버티기

지난 일이 찝찝함으로 남아있을 때가 있다. 정리되어 머릿속 어딘가 위치해야 할 텐데, 헝클어진 채 굴러다닌다. 이럴 때면 네 모서리 맞춰 개어 서랍 속에 넣어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랬다. 한참 지난 일이었지만, 깔끔하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다시 들었다. 선입견이나 감정의 물을 쏙 빼고 들었다. 세 번 되돌려 들어도 혼란스럽다. 거기서 언급되는 정체 모를 '상식'이라는 것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 휴식시간,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다. 이어폰의 발라드가 귀를 간지럽히자 잠 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보안요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입주사 직원이 부딪히는 바람에 자동문이 멈춰 섰으니,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짜증스러운 기분이 몰려왔다. 온몸으로 투덜거리며 로비로 올라갔다. 자동문은 활짝 열린 채 작동 불능 상태였고, 한쪽은 위쪽이 레일에서 빠져있었다. 자동문 움직임을 센싱 하여 작동되는 에어커튼은 아래로 계속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보안요원은 유발자의 연락처를 넘겨주며,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일단 자체 수리가 불가하다고 판단되어 서비스를 요청했다. 그리고 문제 된 현장 상황을 되돌려 봤다.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 급하게 뛰어가다 막 닫히기 시작하던 자동문을 어깨로 들이받는 상황이었다. 이건 CCTV에 다 찍혔으니 빼박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본인의 과도한 행동으로,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물에 문제를 발생시켜 불편을 초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곧 수리요원도 도착할 것이 예상되어 유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의 상황을 설명하고, 곧 수리요원이 도착하니 와서 확인해 보기를 요청했다. 싸늘한 기운이 전해지며, "아니 먼저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물어보는 게 '상식'이지, 수리하는데 와서 보라는 게 무슨 말이냐." 그리고 "내가 문을 발로 차서 그랬냐. 문이 와서 부딪쳐서 그런 거지." 순순한 수긍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순간 열이 올라오면서 언성이 높아지려는 것을 지긋이 내려 누르고 통화를 서둘러 끝냈다. 이곳에서 경험 상, 손수 열 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그 사람과 통화를 했다. 그러더니 변상시키지 말고, 우리가 처리하고 넘어가잔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한 이력이 만만치 않은 사람도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자동문 수리도 다 마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영 개운치 않다. 그 사람이 앞세웠던 '상식'이란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그 사람의 인식 속에 '상식'은 너무 괴리가 커서였다. 양심이라는 벽을 거리낌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상식'이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의미로만 보면, 공통된 지식이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렇게 괴리가 큰 '상식'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사전에 의미가 명확하게 실려 있음에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정도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가변적 기준에 불과함이 증명되었다. 뭇 정치 지도자들이 공정과 상식을 외친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알고 있는 상식인가? 유발자를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번에는 내가 피해자 격이지만, 가해자였던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수에서 분모가 다르면 계산하기 어렵고, 크기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공통분모를 먼저 찾아낸다. 공통분모가 있어야, 계산이 쉽고 크기도 비교할 수 있다. 상식은 공통분모여야 한다. 양심이 밑바탕에 깔린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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