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세운다는 것

by 버티기

요즈음 우리 사회의 특징을 하나 선정하라면 '땅에 떨어진 권위'를 들고 싶다. 꼭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국회의 권위', '사법부의 권위', '교사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가 '땅에 떨어졌다.'라는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권위'라는 말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드는 건 왜일까?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으로 전혀 부정적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권력을 권위와 동일시하거나, 권위적 또는 권위주의라는 말과 혼동하는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보인다.


권력의 사전상 의미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라고 되어 있다. 권위와 권력의 공통점은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는 힘'에 있다. 반면에 차이점은 그 복종이라는 것에 대한 자율성 여부에 있다. 권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인정되어 생긴 복종이고, 권력은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권리와 힘의 작용에 의해서 생긴 복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위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동의'가 수반되었음을 내포한다. 사람들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인정된 권한을 얻을 수만 있다면 권위 없는 권력은 성립할 수 있다. 즉, 권력은 범위상으로 본다면 권위의 일부분이나 부분집합 정도로 볼 수 있다.


권위적이라는 말은 권위라는 말에 '~적'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형태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권위가 없는 사람이 권위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할 때 '권위적'이라는 말을 쓰게 된다.


권위주의의 사전상 의미는 '어떤 일에 있어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로 되어 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모두 사람 관계에서 생겨난 개념들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 권위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인정을 지향하는 반면, 권위주의는 그 관계의 효력을 일방적으로 강제하여 관철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굴복시키려 한다.


이렇듯 권위라는 것과 권력, 권위적 그리고 권위주의는 의미상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다. 권위는 부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인정되었으며 동의가 수반되어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는 힘'이다.


자 이제 권위에 집중해 보자. 권위를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생각한 이유는, '아버지로서, 나의 권위는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권위라는 말로 조금 더 다가가 보니, 난 권위를 권위적이라는 말과 구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권위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가족들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인정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인데,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마치 권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다. 권위주의가 횡행하던 시절, 아버지의 권위적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 수준으로 권위인양 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화나 소통이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권위를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말이나 행동에서 솔선수범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한 채 지나왔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눈을 돌려 사회를 바라보아도 마찬가지 무너진 권위로 아우성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적 가치관 아래서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권위마저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동안 부정적인 폐해를 가져온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지켰어야 할 권위도 같이 청산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새 아무도 그 누구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통치는 권위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나마 직위상 주어지는 권위마저도 위태롭다. '국회의 권위', '사법부의 권위', '교사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모두가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것이다. 권위는 국가나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고 발전해 나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가 상실되면 다음 수순으로 어김없이 대혼란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권위라는 말에는 그 대상이 되는 구성원의 '자발적 인정', '동의'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권위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생기는 '나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렇듯 권위가 무너진 것은, 권위의 주체가 권위의 전제인 '자발적 동의'와 '인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충분한 정당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부족했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부터 정계, 국회, 사법부, 교육계,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통렬한 반성을 물론 권위를 바로 세우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단순하게 법규와 규칙을 강화하는 방법 만으로는 무너진 권위를 세울 수 없다. 그것은 합리적 정당성을 갖추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구성원들의 '자발적 인정'과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가나 사회의 권위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버지의 권위는 내가 찾아나가야 한다. 내가 찾는다고 혼자서 이루어지지는 않고 아내의 도움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부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위를 세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아버지의 권위가 시작될 수 있고, '자발적 인정'과 '동의'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부터 절제되고 신중한 언행, 그리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권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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