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도 여름 휴가를 가는 나라

9년만에 스웨덴으로 돌아와 느낀 점

by ksujin
250723.jpg


스웨덴의 여름밤은 길고도 밝아서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게 한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샘솟는다. 이때가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듯하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때아닌 의욕은 다음날의 피로에 흐릿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의욕을 행동으로 바꾸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흰 화면에 내 생각을 이렇게 가지런히 타이핑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대학생 때 이후로 브런치에 접속한 것도 처음이다. 글이라곤 하나도 쓰지 않은 유령 작가임에도 여전히 작가 자격이 살아 있다. 브런치라는 서비스가 처음 생겼을 때, 나름 써뒀던 조각글을 갖고 '작가 신청'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 이후로 글을 발행한 적은 없지만, '작가의 서랍'을 보니 내가 2016년에 저장했던 글이 아직 남아 있다. 2016년의 나는 스웨덴에 살고 있었다. 교환학생치곤 조금 특이한 편인 스웨덴의 시골(까진 아니지만, 스톡홀름은 아닌) 도시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약 9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스웨덴에 와 있다.


브런치에서의 내 시간은 2016년에 멈춰 있으니 그간 있었던 일을 정리하자면, 나는 교환학생을 무사히 다녀왔고, 코로나를 뚫고 무사히 취업을 했고, 또다시 코로나를 뚫고 무사히 이직을 했고, 지금은 스웨덴에서 일을 하고 있다. 2년의 기간을 받고 나왔으니 길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서의 직장생활은 한국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 경험이 스웨덴 직장생활을 대표하기엔 부족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여러 차이점을 기록해 보고 싶어 글을 쓴다.



6월 말에는 스웨덴의 명절격인 midsommar(하지)가 있다. 이때부터 완연한 여름이 시작된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4월부터 여름 휴가 일정을 취합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나의 최장 휴가는 2주였다. 그마저도 공식적(?)은 아니고, 몇 달 전부터 팀장님께 이야기를 흘려가며 허락(?) 받은 휴가였다. 사실 한국에서 휴가를 가는 데 팀장님의 허락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주어진 연차를 소진하는 거고, 연차를 쓸 때 사유를 묻는 문화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2주 연속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내가 괜히 눈치를 봤을 뿐이다. 한국에서 엄청 많은 회사를 다녀본 건 아니지만, 신혼여행이 아니고서는 2주 넘게 휴가를 가는 사람을 잘 보진 못했다.


여기에 오니 4월부터 여름 휴가 일정을 정해서 팀즈에 올리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그 땐 '7월이 오기나 할까..' 싶었는데 어느덧 midsommar도 지나고 7월이 훌쩍 다가왔고, 동료들은 하나둘씩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다. 난 올해는 스웨덴에서의 첫 해기도 하고 여러모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 여름 휴가를 포기한 터라 팀즈 캘린더를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떤 동료가 휴가를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왔길래 문득 물었다.


"며칠이나 휴가 가? 부럽다!"

"3주!"

"3주?"


3주라는 휴가 기간에 깜짝 놀라 팀즈 캘린더를 보니 다들 짧으면 2주, 길면 5주가 넘는 휴가 일정을 기록해 놓은 거였다. 2주 휴가를 갔다가 돌아와서 1주를 일한 뒤 또 다시 2주 휴가를 계획한 동료도 있었다. 그럼 일 년에 열한 달만 일을 하는 건가? 이게 보통 스웨덴 직장인들의 여름 휴가인가? 에 대해 7월 한 달을 거의 다 보낸 입장에서 자답하자면


그렇다.


나는 일을 하면서 다른 회사와도 연락할 일이 종종 있다. 일간/주간 미팅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그런데 7월 초가 되자, 다들 자신의 휴가 일정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자신의 휴가 기간에 대신 업무를 맡아줄 새로운 담당자를 미팅에 먼저 초대하기도 했다. 어떤 회사와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었는데, 우리 둘 다 "여름 휴가 시즌 전에 마치는" 것을 목표로 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달렸다. 결국 6월 말에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하고 7월 싸이닝 직전에 그 담당자는 휴가를 떠났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계약서를 빨리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7월 중에 관련 팀 미팅이나 협의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웠을 듯하다.


한국에서만 직장생활을 해온 내겐 참 신기한 시즌이다.

여름 휴가로 다들 2-6주간 자리를 비우고, 그것이 업무 진행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지만 일부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문화. 물론 업무에 큰 무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약이 되긴 한다. 특히 그 업무 담당자가 단 한 명일 경우 더욱 그렇다. 내가 뭔가 확인해서 보고할 일이 있을 때 유일한 담당자가 휴가라면, "담당자가 휴가라 확인이 어렵다"는 말을 하기가 참 낯설었다. 하지만 7월을 다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어쩌면 한 달 사이에 이들의 휴가 문화에 익숙해졌을지도. 매일 지나는 집 앞 편의점에도 무려 5주간의 여름 휴가를 알리는 종이가 붙었다. 편의점이란 자고로 24시간 연중무휴 아니던가. 동료들의 연이은 휴가 시작에 어질해질 무렵 편의점의 휴가 공지를 보고 "정말 이 나라는 여름 휴가의 나라구나"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는 신기하게도, 휴가 기간인데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하는 동료들도 있다. 이건 각자의 스타일이나 직장에서 맡은 업무에 따라 다른 듯하다. "No computer"라는 메모를 남긴 동료도 있고, 일단 메일을 보내두면 급한 메일에는 답장을 주는 동료도 있다. 워라밸의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은 의외였다. 그래도 덕분에 7월의 사무실은 절반이 비었음에도 어째저째 흘러가고 있다.


이 나라는 일 년에 한 달을 쉬면서 어떻게 이런 GDP를 이룩한 걸까? 이들의 여름 휴가를 보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질문이다. 사실 답은 잘 모른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 짧은 여름을 참 사랑하는 듯하다. (스웨덴의 겨울을 겪어 보면 단박에 이해가 간다) 이 짧은 여름을 강렬하게 즐기고, 휴식하고, 긴 겨울을 보낼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겠지. 일과 휴식의 적절한 조화 (여름 한정일진 모르겠으나) 가 이들의 생산성을 만드는 바탕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