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수능 기출문제를 떠올리며
Journeys are the midwives of thought.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대한민국 수험생인 적이 있었다면 이 문장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영어 수능 기출문제의 첫 문장인데,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이 문장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당시에도 이 문장을 꽤나 인상깊게 받아들였나보다. 이 문제는 오답률이 높은 고난도 문제였는데, 이때 선생님이 이 문제를 거의 한 시간동안 풀이하셨던 기억이 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심플하지만, 저때의 난 '산파'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한글로 의미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여행이 생각을 돕는다'는 비유적인 문장인데, 알고보니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한 단락이다. 생각에 잠기는 여행을 할 기회가 부족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을 그것도 영어로 갖다놓으니 어려울 수밖에. 이 글을 쓰려고 저 문제를 다시 찾아봤는데 지금 보니 내가 어떻게 이 시험을 치뤘을까 싶다.
십여 년이 흘러 서른이 된 지금, 그리고 어제, 운전을 하며 문득 이 문장이 생각났고 내가 이제야 이 문장을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 문장은 이것이다.
Few places are more conducive to internal conversations than a moving plane, ship, or train.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거의 없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이 문장을 생각했으니 이제야 좀 여행의 기술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제 린셰핑 Linköping 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린셰핑은 내가 2016년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살았던 스웨덴 중남부의 도시다. 교육(대학 연구)과 기업체가 강한 도시라 스웨덴의 대전같은 곳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스톡홀름에서의 거리도 꼭 서울과 대전의 거리와 비슷하다. 스웨덴에 다시 온 뒤 꼭 한 번 가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어제 드디어 짬이 생겨 추억여행을 떠났다. 차로 약 2시간 30분, 도시의 풍경에서 벗어나니 끝없는 들판이 펼쳐진다. 시속 백 킬로미터로 바뀌는 풍경들과 좋아하는 노래, 시원한 커피를 옆에 두고 달리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어 나 좀 어른같은데...?'
2016년에 스웨덴을 떠날 땐 평생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9년이 지난 지금 운명처럼 스웨덴으로 돌아와 린셰핑으로 가고 있다니. 그것도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어 직접 운전을 해서 가고 있다니. 나 좀 성공한건가? 싶으면서 내가 이전보다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스무 살, 갓 성인이 됐을 땐 편의점에서 술과 담배를 살 수 있어서 내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도 스무 살에 얻은 자유는 그 폭이 상당했다. 시간표를 마음대로 짤 수 있었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괜찮았고, 밤새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 있었다. 이 정도가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어-른'의 자유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물론 학교에 가지 않거나 밤새 술을 마시면 출석 점수가 깎이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후폭풍이 뒤따랐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
스물 네 살-스물여섯 살, 인턴으로 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첫 정규직 직장을 얻었을 때 또다시 내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인턴 월급이 200만 원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처음으로 내 손으로 벌어본 돈이었다. 월급을 받기 위해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평일의 개인적인 생활은 점점 줄였다. 직장 동료, 직장 상사라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인간관계가 생겼고 많이 헤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는 공부를 안 하면 내 성적이 떨어지고 등록금이 아까운 것으로 끝이었지만, 회사 일을 잘 못하면 팀이 피해를 보고 내가 질책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물여덟 살, 차를 샀고 운전을 시작했다. 금요일 밤에 드라이브를 갈 때, 느지막히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가서 커피를 사올 때 내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버스와 지하철로는 가기 힘든 곳을 언제든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얻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이 시작되면 으레 늦은 밤 드라이브를 떠났다. 주로 경기도 근처의 바닷가에 가거나 달리기 좋은 고속도로를 탔다. 차 안에서 토요일의 시작을 맞이하고 고속도로 출구 바로 앞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드라이브의 마무리였다.
그리고 서른 살, 말과 행동에 조심스러워질 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연봉이 얼마냐고, 투표는 어떤 정당에 했냐고, 왜 이혼했냐고, 왜 살이 쪘냐고 묻지 않는다.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이 왜 돌아가셨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말로 대화를 연결하려 한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어-른들의 관계에서는 가끔 공간을 메우는 무해한 대화가 필요하다. 날씨가 춥고, 덥고, 비가 오고, 곧 주말이고, 월요일이라 피곤하고, 커피는 아이스를 좋아하고,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일과 사람을 좀더 구분하게 됐다. 일로 만난 사이인 상대방이 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에 더 가까워졌다. 나도 요청하고 싶어서 요청하는 게 아니니 저 사람도 거절하고 싶어서 거절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기보다는 입장과 입장이 만난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입장이 다를 뿐 서로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흔 살이 되면 나는 어떨 때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할까?
어른의 장점은, 우유에 제티를 세 개씩 타서 먹어도, 카레에서 당근을 빼고 고기를 잔뜩 넣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는 십 년이 지났지만, 내면의 유치한 생각들은 정말이지 변함이 없다. 난 어릴 땐 부모님이 사주셔야 먹을 수 있었던 구슬 아이스크림과 초코우유를 마음껏 사먹고, 학원 숙제로 영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어깨보다 길게 기를 수 있어서 어른인 것이 좋다. 한편으로는 우유를 쏟아서, 성적이 떨어져서, 말대꾸를 해서 손바닥을 맞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냥 손바닥 몇 대로 벗어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