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

침전하는 날에 나는 몇몇 장소를 떠올린다

by ksujin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마음이 편한 장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된다.


월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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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장소다. 동해남부선(지금은 동해선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을 타고 삼십 분 정도면 도착하는, 부산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간이역. 고등학생 때 나는 지독한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부담감, 치열함, 긴장감, 간절함같은 감정들은 아직도 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 스트레스는 실망스러운 성적표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성적 자체에 실망해 울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 수능, 그 하루의 결과에 따라 이 짓을 일년 더 해야 할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나는 너무 불안했다. 불안해할 시간에 재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공부에 더 정진하면 될 일이었지만, 첫 수험생활의 멘탈 관리가 그렇게 완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김영하의 책을 읽고, 저녁시간에 친구와 운동장을 돌며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아마 어느 주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답답한 마음에 바다를 보고 싶었던 나는 우연히 월내라는 곳을 알게 됐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 그리고 이 작은 역을 만났다.

역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이렇게 바다가 펼쳐진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의지로 바다를 보러 간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자유로운 바다를 보며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별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고 조용한 장소에서 받은 위로가 아직 떠오르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삼십 분이면 바다를 보러 올 수 있으니 부산에 사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내 안식처인 것은 아니다. 부산은 내 고향이지만 내가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쓰던 곳이기도 하다. 부산에는 삼십 분이면 볼 수 있는 바다가 있었지만 나의 오롯한 삼십 분은 없었다. 학교가 끝난 후엔 바로 집으로 가야 했고 신발끈을 미처 묶지 못하거나 화장을 하면 혼이 났다. 그것은 학생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는 직급이 있다면 그 마지막인 '대'학생이 된 지도 십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는, 학생 땐 학생다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신발끈이 풀린다든가 화장이나 고데기를 한다든가 머리를 오래 말린다든가 하는 것이 학생다움을 그렇게도 파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동의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도 부산을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났지만 가끔은 마음이 돌아가는 곳이 나의 부산이다.

특히나 지금은 없어진 저 작은 월내역, 여전히 그 앞에서 파도치고 있을 바다는 부산에 몇 없는 나의 온전한 쉴 곳이다.


네스트호텔

대학생 떄 나는 호텔 이곳저곳을 경험하는 걸 좋아했다. 비싼 취미였기에 자주 갈 수는 없었다. 눈에 거슬리는 잡다한 집안일이 없고, 꽃무늬 벽지가 없고, 촌스러운 체리 몰딩이 없어서 나는 호텔을 좋아했다. 네스트호텔에 처음 간 것도 대학생 떄였다. 평일 투숙이 가능한 대학생의 장점을 활용해 꽤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얌전했고, 조용했고, 당신만의 은신처라는 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차가 없었던 대학생 때는 인천공항까지 지하철로 간 뒤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는데, 두 시간이 좀 안 되는 그 길부터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 좋았다. 나는 보통 2박의 일정으로 이곳에 왔다. 첫날에는 원룸과는 다른 큰 침대와 깔끔한 침구에 파묻혀 마음껏 바스락거리고, 슬슬 걸어나가 해물 칼국수를 먹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먹는 것이 내 코스였다. 다음 날 체크아웃 시간에 물밀 듯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그 이후는 온전히 호텔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천탕에서 하늘을 떠가는 비행기를 셀 수 없이 바라보고, 수영장에 누워 저 먼 바다의 울렁임을 지켜보는 것이 그때의 내가 누리던 최고의 호사였다.


투박한 색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이 건물은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을 준다. 최근에도 다녀왔는데, 건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깔끔한 관리와 담백한 서비스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의 휴식이라면 나는 늘 이곳을 생각한다.


아이슬란드

2018년 7월 첫 인턴 생활을 마치고 떠난 여행지 아이슬란드. 그때 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을까? <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라는 에세이를 읽고 아이슬란드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광활한 자연과 그 깨끗함, 그리고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때가 아니면 멀리 떠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최대한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경유를 두 번이나 하는 비행기를 끊었다. 한국-파리-코펜하겐-레이캬비크라는 지금은 절대 선택하지 않을 일정으로 나는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교환학생 때 유럽에 살면서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던 터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슬란드는 정말 신세계 그 자체였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대자연이 거기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혼자 다니는 여행을 사랑하는 내가 지금도 유일하게 다른 누군가와 가고 싶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 풍경을 보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이때는 운전을 못 해서 아침에 시간을 맞춰 투어 버스를 기다리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버스를 타고 레이캬비크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 아이슬란드에 다시 간다면 단연코 렌트카를 타고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선택할 것이다. 넓게 펼쳐진 풍경과 그때 느꼈던 이유 모를 무력감, 외로움, 빙하 호수에서 얼음 조각을 깨물었을 때의 쨍한 느낌, 뜨거운 물에서 나던 유황 냄새 - 내가 아이슬란드를 사랑하는 이유다. 다시 가기 힘든 곳이라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곳일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가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겠지, 풍경은 늙지 않고 그 풍경을 보는 나만 나이가 들어갈 뿐이다.




마음이 무거웠던 날 이 글을 쓰기 시작해 완성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동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마음이 진정됐기 때문에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만나는 삶의 단계에 힘들 때 개발했던 나만의 장소들. 마음에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진 것처럼 안식처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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