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낯선 장소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선정릉은 초보자가 달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코스였지만 새로운 코스를 달려보고 싶었다. 며칠 전에는 한강 잠수교를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이른 초저녁에 탐방을 갔다가 이내 다시 바로 돌아와 버렸다. 초저녁 시간대에는 내가 생각했던 달리기 환경이 아니었다.
같이 사는 동생 한 명이 최근에 양재천 달리기를 하고 오는 것을 보고 나도 양재천 코스를 한번 뛰어보고 싶었다. 양재천 근처는 몇 번 가보았지만 도로 위에서 스쳐 지나듯 보기만 했지만 실제로 달리기 코스는 보지 못했다.
양재천에 도착했다. 출발지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감이 잡히질 않았다. 네이버 지도를 열어서 대충 출발지를 정했다. 직접 장소에 도착했더니 뭐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복이나 핸드폰을 팔에 거는 장비라는지 그런 것 없이 무작정 대충 집에 몇 벌 있는 운동복만 걸쳐 입고 나왔다.
달리기 할 때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거나 들고뛰는 것을 불편할 것 같아서 그냥 아무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만으로 뛰었다. 낯선 장소지만 내가 출발한 지점은 그래도 기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그냥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양재천 양옆으로 길게 뻗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머리 위로 날갯짓하는 두루미 같은 새 한 마리, 듬성듬성 자리 잡은 갈대, 두 줄로 대형을 유지하며 뛰는 달리기 크루들, 신호음을 울리며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들 그리고 뛰기 딱 좋은 선선한 날씨와 맑은 공기,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연인,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기 하는 사람과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들.
달리기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참 다양한 환경과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 뻗은 산책로를 무작정 뛰다 보니 반환점을 어디서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멀리 왔나 싶을 무렵 천을 건너 반대쪽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보여서 얼른 건넜다.
반대 방향으로 다시 뛰어오는 내내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출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멀리 뛰어 왔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얼마큼 힘들게 뛰어왔는지도 계산하기 힘들었다. 이쯤이 맞을까 하고 천 위로 올라갔더니 아파트가 나오고, 다시 내려와 좀 더 뛰어서 다시 천 위로 올라오니 공사장이 나오니, 점점 불안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네이버 지도를 한번만 보여줄 수 있냐고 도움을 청해야 하나 싶었다. 다시 천으로 내려와 달려보니 익숙한 조형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겨우 내가 출발한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달려온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데 난항을 겪었다. 핸드폰이라는 안전장치 없이 달려오니 순간의 기억만으로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었다. 이 순간에도 작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인생도 살다 보면 알 수 없이 잘못된 길로 멀리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 때가 있고, 스스로 어떻게 서든 돌아오겠지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시간이 걸려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을 땐 마음이 조급해서 힘든 상황에도 숨이 차도록 뛰게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