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 글쓰기에 대하여
취미가 뭐예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질문이면서,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뭐든 하나를 꼽기 어려워하는 나는, 특별히 잘하는 일이나 즐겨하는 일에 관한 질문에도 예외없이 곤란해하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독서’를 답으로 내놓곤 했다.
누워서 아이패드로 책 읽기, 근교 피크닉, 서점에서 책구경하지, 멀리 낯선 곳으로 여행가기, 버스나 기차에서 떠오르는 말들 메모하기, 노트북 열고 생각나는대로 쓰기 같은 것들이다. 요즘 내가 여가시간에 시간 보내길 좋아하는 것들이다. 따지고보면 모두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가장 빈번하게 해오고 있는 것을 꼽으면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된다고 믿는다. '독서'나 '음악 감상, '배드민턴'같은 것들이 오래전부터 '취미'란을 차지해왔다면, 글쓰기는 좀 새롭고 멋져 보이는 취미가 된다. 매주 토요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도 글 쓴다는 것이 뭔가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평범한 나조차 쓰고 있으면서도 글쓰기는 대단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는 취미 글쓰기를 말하고, 또 권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아이일 때부터 일기를 써왔는지도 모른다
제주에 정착하기를 마음먹고, 처음으로 1년짜리 집을 계약해 살기 시작했다. 그곳에 사는 동안 자주 옆동네 카페를 찾았다. 시골 동네의 가게들은 무엇을 팔든지 간에 아침 열 시는 되어야 문을 여는데, 그 카페는 7시부터 부지런히 문을 열었다. 아홉 시 즈음 도착하면, 북적이는 낮에는 들을 수 없던 잔잔한 팝 음악이 흐른다. 커피도 비싸고 시끄러운 게 단점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다 잊게 된다. 아침 겸 점심이 될 브리오슈와 카페라테를 주문한 다음, 매일 앉던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다.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기쁨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고, 방해받지도 않을 수 있는 기쁨 말이다.
아무거나 썼다. 어떤 날은 바다가 좋아서, 어떤 날은 오름이 좋아서 썼다. 또 어떤 날은 지금 앉은자리에 대해 썼다. 얼마 전 할머니, 할아버지뻘 동료들과 들은 회고록 쓰기 수업을 들은 이후로 전보다 조금 더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언제까지고 이 고상한 취미를 놓고 싶지 않아 졌다. 기분 좋은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해변에 앉아, 칵테일 한잔을 두고 글 쓰는 여유도 상상했다. 따지고 보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즐거워졌다.
내 취미로서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취미가 뭐냐고 묻는, 그러니까 드디어 오랫동안 곤란해오던 질문의 답을 비로소 찾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찰나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던 몸부림이었다. 나는 뭐든 쓰면서 괴로워하다가도 금세 멀리서 나 자신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들어내다 보면 어느샌가 괴로움은 그저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아이일 때부터 그렇게 일기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의지로 쓰인 활자를 보는 일. 행위 그 자체가 주는 만족 중에 글쓰기만큼 간단한 것도 없다. 누군가, 혹은 나조차 읽어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았다. 누군가 내 마음을 엿본다고 해서 안절부절못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준비물도 필요 없고 독특하면서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취미가 있다고?
그 어떤 취미보다도 글쓰기를 취미 삼으면 특별히 좋은 점을 소개한다. 첫째,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아무 펜이나 종이, 또는 자판이 딸린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다. 펜과 종이는 단돈 천 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고, 종이 대신 노트를 고른다고 해도 이천 원이면 된다. 독서가 ‘책’을 필요로 하는 입력의 행위라면, 글쓰기는 출력하는 일이다. 머릿속에서 만들어서 손가락 끝에서 표현된다. 주체인 ‘나’만 있다면 특별한 준비물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둘째, 유니크(Uniqui)하다. 인간은 조금씩 특별해지고 싶은 심리를 가진다. 글쓰기만큼 '적당히 유니크한' 취미도 없다. 독서나 음악 감상은 좀 흔하지 않은가. 게다가 시대가 변할수록 사람들의 지능, 지식은 상향 평준화되어왔다. 독서나 음악 감상에도 대가(大家)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종종 그런 것들을 취미로 내세우려면 그 분야에서 적당히 깊고 풍부한 지식을 뽐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에 반해 글쓰기는 지식을 뽐낼 필요가 없는, 간단히 말하면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셋째,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글쓰기는 해소의 활동이다.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고, 드러내는 일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전보다 몸도 마음도 튼튼해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비슷한 의미에서 사진이나, 그림 등의 창작활동도 좋은 취미 활동이지만 특별한 장비와 기술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만큼은 글쓰기가 우위다. '내 생각을 글로 쓰는 일'에서 필요한 기술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배웠던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면 좋을까? 일기장을 꺼내본 지 오래되었다면 일기 쓰기로 시작해보자. 좀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일기를 토대로 자전적 에세이를 한 편씩 써보는 것은 어떤가. 상상력을 펼쳐보고 싶다면 지난밤 꿈에 영감을 받아 소설 써보기를 제안한다. 비평을 좋아한다면 관심분야에 대해 파고들어 조사한 다음 내 의견을 덧붙이는 글쓰기도 좋다. 차분하게 정리하고 주장하는 글을 써보면 어떤 기사에 댓글을 다는 일 보다 큰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이다. 또 이런저런 글이 쌓이고, 또 고쳐쓰기를 마음먹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의 책을 가진 저자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아 달라면 나는 에세이 써보기를 추천한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나의 생각이 담긴 글 말이다. 우리는 무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쓰며 에세이의 맛을 조금씩 느껴왔다. 에세이로 시작하는 글쓰기는 특별히 ‘등단’ 같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써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특히 자기 세계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고, 거기에서 느끼고, 느껴지는 내 서사를 마음껏 편집할 수도 있다.
쓴다는 것은 치유에 특히 효과적인데, 특히 내 마음을 적어나간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에세이는 대부분 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뭐라도 쓰고 싶다 생각하며 ‘쓰기의 세계’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부터 써본다. 나와 내 시선에 대해 쓰다 보면 단지 쓰는 행위만으로도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그렇게 쓴 글을 나누다 보면 타인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로 글을 나눈다는 것은 타인과 자신의 세계를 번갈아 여행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취미 글쓰기로 에세이를 선택했다면 어떤 글을 쓰냐는 질문에 "에세이"라는 비교적 설명이 필요 없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취미를 묻는 질문에 영화감상, 음악 듣기, 달리기 같은 전통적인 대답들처럼, ‘글쓰기’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쓴다고 말하면 종종 놀림받게 되는데, 쓰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져서 유난스럽지 않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글과 글쓰기를 매개로 서로 어떻게 삶을 대하고 있는지, 요즘의 나는 어떤지 더 많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자는 말한다. ‘글쓰기는 절대 취미가 될 수 없다’고. 써야만 하는 괴로움에서 온 문장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래도 괜한 오기가 생겨 답하고 싶어 진다. 이런 쓰기가 취미가 아니면 무엇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특별나게 잘하는 게 없다고 믿었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꾸준히 하는 건 별로 없던, 그래서 취미란에 뭔가 하나를 골라 적은 일을 아주 곤란해하는- 우유부단했던 어린이(바로 나다)에게 말하고 싶다.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얼른 ‘글쓰기’라고 대답해보자고. 그럼 나도 뭐라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고? 바로 지금이다. 당장 *적당히 좋아하는 노트와 펜을 꺼내들자.
* 너무 비싸고 멋진 노트와 펜은 아무거나 쓰기 시작하기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