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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Aug 08. 2023

왜 쓰는가. 아니 왜 끼적이는가.

왜 쓰는가. 아니 왜 끼적이는가. 이것은 왜 쓰지 못하고 끼적이는가에 대한 물음보다는, 왜 쉴 새 없이 마음의 말들, 번쩍이는 생각들을 내뱉는 행위를 하는지에 관한 물음에 더 가깝다. 



1. 

조금 더 품위 있어 보이는 단어를 가져와 질문해 본다. 나는 왜 메모하는가!


나는 어쩐지 가볍게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흩날리는 아이디어를 조금이라도 붙잡아보려고 쓴다. 흩날리는 것들은 대개 이런 거다. 하루를 시작하며 온종일 잊지 않고 읊어내고 싶은 문장을 적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은근히 다가와 유혹하는 것들(이를테면 인스타그램이라던가 유튜브 같은. 그러니까 대체적으로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뒤로 미워두게 하는 것들이다.)을 오늘 하루도 무사히 피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서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좋은 글감이나 해보면 신날 것 같은 일들이 떠오르면 산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쓴다. 언젠가 어느 유명인(기억나질 않는다)이 말하길, 자신은 한번 생각난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요한 아이디어라면 반드시 한번 더 생각난다는 이유다. 나에게는 그런 여유와 믿음 같은 친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낚아채지 않는다면 이 지구에서는 영영 다시 떠올리지 못할 것처럼 허겁지겁 쓴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른 멋진 생각이 떠오르면 재빨리 적는다. 이때는 속도가 중요하므로 대체로 키보드를 이용한다


책을 읽는 동안 따라 써보고 싶은 문체를 발견하면 일단 밑줄을 쳐 두고, 지금 당장 내 것으로 만들고 싶으면 펜을   꺼내 따라 적어본다. 가만히 따라 적다 보면 내 글감과 적당히 스며들어 좋은 연습이 된다. 때로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나 생경한 단어를 발견하면 역시 적어둔다. 이때는 가능하다면 만년필을 꺼낸다. 소중히, 천천히 쓰며 아끼는 마음에서 그렇다. 




2. 


나는 다시 그것들을 붙잡아 뭘 하려고 하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아무튼, 메모>에서 정혜윤이 말한다. "사실 세상은 망각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있다. 구태여 기억할 필요도 적어놓은 이유도 없는 일로 가득하다."라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구태여 메모하고 싶게 만드는 믿음에 대해 덧붙인다. 


- 미래에 내가 해낼 일을 기뻐하고 싶다. 

- 내일은 더 나아진다. 조금씩 바꾸면.

-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다)

- 메모는(...) 내가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메모는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최초의 공간(이다)


그의 문장들을 곱씹으며 나의 메모에 대해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 망각의 세계를 구태여 거스르는 이유에 대해. 그러니까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길을 잃거나 잊지 않고, 좋은 문장을 붙잡아서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거다. 


보거나 읽어 가장 많은 이득을 볼 사람, 그러니까 과거의 메모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의견을 조금 더, 누구라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가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목적에 맡게 최대한 세상에 말하고 싶은 미래의 내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또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힌트를 주고 싶은 마음에. 때로는 거기 그 메모, 그 생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아서 - 어쩌면 그 찰나의 몰입이 주는 중독이 좋아서. 생각은 할수록 번져나가고, 번지는 틈 사이로 반짝이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강태공의 마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쓴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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