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취향

바다를 예찬합니다

by 에트바스


내가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었더라.


하고 생각해보면 나는 자주 향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 “어디 갈래?” 하고 물으면 나는 어김없이 물이 있는 곳을 떠올리게 된다.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바다를 선택한다. 각지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다)를 향하는 대여섯 갈래의 길 중에서도 나는 기왕이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어 포르투갈길을 골랐다. 큰 맘먹고 트래킹을 결심하며 선자령을 걸을 때도 기어코 바다를 옆에 두고 잠들었다.


바다 위를 동동 떠다니다가 이내 나는 수영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친구와 함께 목이 터져라 구조요청을 하던 우도에서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엉덩이가 다 젖도록 세일링을 즐기던 보라카이의 풍경을 떠올린다. 바다라면 물놀이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찰랑이며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파도도 좋고, 화난 것처럼 큰 바위 위로 커다랗게 부서지는 모습도 좋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작은 고둥, 이따금씩 헤엄치는 문어며 물고기 구경도 참 좋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손길을 건네면 조개나 게도 그 모습을 내민다. 그것들을 목격하면 어린아이 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다. 파란 바다가 그리울 때면 동해로, 지나간 섬 여행이 떠오르면 남해로, 조개잡이가 생각나면 서해로 떠난다.


나의 여행 취향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여름은 일광욕이며 물놀이며 실컷 즐길 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던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는 백사장 대신 백설(雪)장 위에서 보냈다. 찬바람 부는 바닷가가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싶지만, 그 바람을 실컷 맞고 나면 마음속이며 머릿속이며 깨끗하게 비워져서 오직 ‘나’만 남은 것 같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나는 이윽고 바닷가로 이사해서 살았다. 날마다 바다 앞에 서진 않았어도 마음만은 기뻤다. 때때로 밀려오는 바다 내음이 '내가 여기에 살고 있구나' 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하지만 요즘의 내게 다시, 어디로 가고 싶니? 하고 묻는다면 난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너 가고 싶은 곳!” 하고 대답하고 싶어 진다. 나는 원래 너라면 다 좋았는데, 자꾸만 떠나면서 생겨버린 취향이 종종 내 대답을 바꿔놓았었다. 다시 대답을 바꾸고 싶다. 여행은 어쩌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생경한 곳에서 머물다가 끝내는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어느 곳이던 너랑 머물다가 돌아오고 싶어 진다. 네가 말하는 곳이 바다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제 나는 그게 아니라도 나는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