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내 삶의 운전대를 움켜쥐다

by 에트바스

2015년 11월 8일.

막 밤 10시가 지나고 있었다. 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에 자고 있던 엄마가 깼다. 엄마는 유난히 잠귀가 밝았다. 내가 늦은 밤 살며시 집에 들어올 때도 엄마는 늘 눈을 번쩍 뜨곤 했다.


- 또 어디가는데 이시간에 짐을 싸?

- 제주도 가려고.

- 언제 오는데?

- 한 달 정도 있다가 올게.


엄마는 내가 못 산다는 말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한 달이나 떠나는 여행을 전날 밤에 말했으니, 여행 간다는 자식의 말에 혀를 끌끌 차는 엄마의 반응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기억하는 한, 나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딸이 못 되었다. 그것은 타고난 기질이기도 했고, 맞벌이였던 부모의 탓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찌 됐건 영 무뚝뚝하게 자라왔다는 사실이 내 말과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출발 전날 짐가방을 챙기며 몇 시간 후에 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좀 기가 찼다. 비교적 사고 없이 보낸 청소년기 덕분일까. 그동안 가출이라던가 경찰서에 불려 간다던가 하는 사고 같은 것은 없었으니, 가끔의 멋대로 외박을 하거나 불쑥 여행을 떠나는 돌발행동에 엄마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었다. 긴 여행을 위해 서툴게 짐을 싸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몇 주 동안이나 고민하던 시간의 마무리다.


한 달 전 유럽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은 흔쾌히 긴 휴가를 쓸 수 있는 회사에 다니거나, 그렇지 않은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었다. 함께 여행하고 있는 HJ도 퇴사와 동시에 이곳에 왔다. 내 포지션은 중간쯤. 2주간의 휴가를 낼 수 있지만 흔쾌히 쓰기는 좀 불편한 회사에 다니는 중이었다. 그중 몇몇은 스냅사진을 찍어주거나 가이드를 하는 프리랜서였다. 나는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한 처지라 '회사원'이 아닌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 있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하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취직을 하는 일이 당연한 순서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회사원이 아니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HJ는 몇 년 전 동해를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나 죽이 잘 맞는 친구였다. 우리는 몇 번이나 함께 국내 여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제법 용기를 내서 유럽을 향하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나는 자주 회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인 걸 그땐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났다. 한국에 도착해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파리에서보다, 피렌체에서보다 더 마음이 들뜨고 뒤숭숭했다. 8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다니던 회사와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긴 여행을 떠나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어디로 인지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유럽은 3개월 동안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고 하던데, 다시 유럽에 갈까. 아니면 좀 가까운 제주로 갈까. 나는 빨리 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다면 이곳저곳 마음껏 여행을 다니면 되겠지만, 그건 형편에 맞지 않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돈을 조금씩 벌면서 여행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유럽의 한인민박에서 일하면 먹고 자는 일이 해결되고, 생경한 유럽풍경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한 달에 300유로쯤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300유로로 한 달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딪혔다. 그렇다면 제주도다. 한국이니까 뭐든 먹고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아르바이트로 충분히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 있었다. 제주에 가면 좋아하는 바다도 실컷 볼 수 있다. 지난 2년 사이 제주도를 몇 번이나 여행했지만 나는 갈 때마다 더 머물지 못해 아쉬워하곤 했다.


그동안의 제주여행을 휴가에 맞춰 주로 여름이었는데, 이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 간다면 사진으로만 보던 유채꽃밭에서 실컷 뒹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름 바다도 끝내주지만, 유채꽃이 춤추는 제주는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상상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 구입한 하늘색 마티즈는 제주바다를 꼭 닮은 것 같았다. 중고여도 쌩쌩 잘 달릴 줄 아는 이 차를 가지고 가서 그 해안가를 달릴 수 있다고 상상하자 배시시 웃음이 났다.


회사에 입사한 후부터 줄곧 돈을 모아 세계 일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꿈은 제주 한 바퀴 여행으로 바뀌어 조금 소박해졌지만, 어쨌든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건 그동안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한 달 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석 달은 눌러앉을 생각이었다. 유채꽃과 뒹굴기 위해서는 무사히 겨울을 지내고, 적어도 봄이올 때 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제주로 떠나는 배편을 예약했다. 메가쇼킹(만화가 고필헌)의 <혼신의 신혼여행>을 보고 낄낄대며 언젠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가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일, 밤새 항해하는 배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들(영화에서 봤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마구 떠올라 혼란스러웠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유채꽃은 한겨울부터 피어난다.

* <혼신의 신혼여행>은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자전거 국토종주 신혼여행을 그린 만화다.


출발 며칠 전,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전 9시 30분에 출항하는 이 배에 차를 실으려면 7시 30분까지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목포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을 확인하고 6시쯤 출발하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7시 30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4시, 야간에 초행길이니 3시쯤엔 출발해야 했다. 아침잠을 보약으로 생각하는 편이지만, 하루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왠지 모를 자신감도 들었다.






어젯밤 짐을 싸고, 방금 전에 잠든 것 같은데 곧 출발할 시간이다. 벌써 8년이나 되어 모서리가 깨진 20인치 캐리어. 1박 2일 여행용 배낭, 그리고 피렌체 여행에서 사 온 싸구려 크로스백까지 챙겨 들었다. 아직 11월 초라 춥지는 않지만 제주에 있는 동안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외투를 하나 더 챙겨 들었다. 생각보다 짐이 많지만, 이 작은 자동차가 아주 든든하다.


새벽 3시. 영원히 해는 뜨지 않을 것만 같은 새카만 밤. 엄마는 언제 일어났는지 반쯤 뜬 눈을 비비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나 같은 딸은 도저히 키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갑자기 떠나버리는 딸이라니. 딴말 않고 그저 잘 다녀오라 말하며 손을 흔드는 엄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은 차에 짐을 가득 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동을 걸었다. 이 마티즈는 꽤 오래된 중고 자동차로 블루투스는 꿈도 못 꾸고, 유에스비를 꽂아 넣는 포트도 없다. 며칠 전 유에스비를 연결할 수 있는 젠더를 주문하고, 가지고 있던 유에스비에 갖고 있던 음악 파일을 넣어 두었다. 모두 목포로 가는 길을 위해서였다. 혹시 졸릴 수도 있으니 좀 시끄러운 노래들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음악 없이 목포까지 내달리는 3시간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에스비를 포트에 꽂자 어린 날, 추억이 담긴 노래들이 흐른다.


양들의 모든 것은 그의 전리품!

늑대 빌어먹을 짐승 같은 놈들!


90년대, 거의 모든 십 대들의 우상이었던 에이치오티와 내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을 책임졌던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들이 흐른다. 굳이 외운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정확하고 큰소리로 따라 불러진다. 지금 내 모습이 대견하다 싶다가도 피식하고 헛웃음이 났다. 나는 가사처럼 어쩐지 양이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겨우 늑대를 피해 제주로 간다. 차가운 밤, 혼자만의 시간, 혼자라는 기분.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 지나간 일상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끔찍하게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일상이던 날들. 그리 지루하진 않았지만, 때론 우울했던 날들이 그렇게 지나간다.


'늑대와 양'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목포여객터미널에 다다를수록, 다행히 내 눈은 점점 더 말똥말똥 해졌다. 산타루치노호에 차를 싣고, 선적을 돕는 직원들은 차를 배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 객실은 50명은 족히 누울 수 있는 큰 방. 객실로 들어서자마자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나는 배가 출항하기도 전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