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흘리의 밤

비바람이 치는 바다가 잔잔해져 오면

by 에트바스

야관문 주를 끝으로 막 파티가 끝나던 참이었다.


나는 토마토가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는데, 육지에서 알고 지내던 희가 놀러와 함께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토마토는 술을 마신 후 동네 산책 하는 일을 즐기곤 했는데, 뒷정리는 간단히 끝내고 산책 가자는 그의 제안에 나와 희가 따라 나섰다. 나는 가진 옷 중에 가장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토마토의 장갑도 빌려 꼈다. 랜턴도 챙겨 들었다.


토마토 하우스는 대로변에 붙은 작은 마을로, 마을 중간쯤 30명 남짓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분교가 있는 시골이었다. 그런 선흘리의 밤은 지독히도 캄캄했다. 꽤 밤이 깊어서이기도 했지만, 가로등도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제주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 듣는 대로라면 감귤나무 때문이라고 했다. 귤 나무는 밤에 빛을 받으면 잘 자라지 못한댔다. 밤이 있어야만 잘 자라는 귤에 의구심이 들었다. 귤나무 때문이 아니라 인적이 드무니 전기를 아끼기 위해 늦은 밤에는 가로등을 꺼두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제주에는 고속도로가 없지만, 마을 옆으로 난 97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잘 빠진 도로였다. 그 잘 빠진 도로가에는 사람도 집도 많지 않았다. 정말로 귤나무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 밤도 그랬다. 땅에 붙은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별은 셀 수도 없이 반짝일 만큼 캄캄한 밤이었다.


토마토와 희,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나란히 걸으며 깊숙이 서로의 팔짱을 끼었다. 두꺼운 옷과 깊숙한 팔짱에도 나는 춥고,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검은 밤의 바람은 너무 세차서 서로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조금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팔짱을 더 꼭 끼었다. 마을 둘레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우리는 이내 술에 듬뿍 취한 도시의 샐러리맨처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통기타를 배우면 불러보리라 생각했던 노래가 생각났다. 해변가에 피운 모닥불 맡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호기롭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유상록의 <연가>였다. 이어지는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우리는 거의 동시에 머뭇거렸다. 바다가 잔잔해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된댔더라. 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그런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을 번갈아 치면서, 그냥 아무렇게나 불렀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나는 문득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연히 만나 겨우 두 달 남짓 함께 지내온 토마토.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희. 내가 만난 토마토와 희는 아무에게나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을 온전히 아는 일은 불가능히지만, 그럼에도 알고 싶어 애써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쩐지 그들이 웃는 모습이 좋아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 사람들처럼 나도 가끔은 꺼내 놓을 수 없는 마음들을 어쩔줄 모르고, 꼭꼭 담아 두고만 다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찔끔 나온 눈물은 밤바람이 세차서겠지 하고 얼버무려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지내온 시간이 생각나서 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맞이한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자꾸 더 신나게,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우리의 밤 산책도 끝이 났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언제쯤 마음을 내려놓는 일에 익숙해질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내가 태어날 때쯤 벌써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던 토마토와 희는, 어쩌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