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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22. 2023

나의 시간을 줄게

이혼하면 어때 #29

살아오면서 난 다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다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세월이 흘러 수많은 경험이 쌓이고 결혼과 이혼이란 인생의 큰 굴곡을 겪고 나니, 다정함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았다.


단순히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상황에 따라 말을 이쁘게 하는 것이 다정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 느낀 다정은

그 사람을 애정 있게 주시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며 공감하고,

내 몸 같이 아끼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주변 모두에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시간과 감정의 그릇은 정해져 있다. 고로 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수에게만 나의 다정함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결혼생활 내내 우리는 다정하지 못했다.

그냥 얘기를 잘 들어주고 이쁜 말만 골라 한다고 다정(多情)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다투던 어느 날, 내 몸은 많이 아팠고-전에 말한 것처럼- 전처는 네 몸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 그런데 그게 우리가 살아온 패턴이더라.


그녀가 아프고 힘들 때 내가 얼마나 챙겨주고 신경 써주었을까?

내가 서운하지 않게 해 줬다는 어떠한 확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내가 아프고 힘들 때 손 내밀지 않았고, 그녀도 마찬가지였겠지.


그것이 별다른 문제가 되거나 서로에게서 멀어질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했지.

전처는 나와 다르게 일상에서 불만이 많았다.

본인 기준에 못 미치는 주변 사람들의 매너, 가족 친지들의 생활방식 및 요구, 나의 여러 가지 생활 습관들에 대해.


물론 본인도 남에게도 엄격한 사람이라 그 불만들이 제법 타당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정함이 부족했는데 그것이 나와 멀어진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럼 난 어땠을까.

연인인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것은 남자의 단어-비전, 믿음, 듬직함-가 전부라고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연애 시절에는 대체로 그런 내 모습을 좋아해 주었으니까.


오로지 회사 일과 개인 취미에만 집중하며 그녀에게 소홀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반성한다고 돌아갈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부족하고 미완성인 남자고 남편이었다.


젊은 연애 시절처럼 쉽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좀 더 다정하게, 좀 더 이해하려고 했다면 돌싱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사랑을 준다는 말처럼,

나는 내 시간을 많이 주고 함께 하며 공감해야 했다.


서로 결심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야 가능한 일인데 그것을 모른 채 연애 하듯 결혼생활을 했으니 끝이 좋을 리가 없었겠지.


***


정을 많이 준다는 다정(多情)이란 부부 사이에 단순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다정하기 위해서는 배우자 혹은 연인의 눈과 귀와 입이 되고, 또 팔다리가 되어 대신 말하고 듣고 움직이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니 서로 흉내라도 내보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겁에 대해 말하기를 '3천 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내려오는 하늘의 선녀가 집채 만한 바위를 옷깃으로 한 번씩 쓸어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부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몇 천겁의 연이 전생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부부의 인연을 너무 소홀히 보내고 헤어졌으니 난 참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난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 다정(多情)이 일반적인 다정함인지 모르겠다. 다만 다정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이제 나의 시간을 줄게. 다정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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