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스 죽이기>라는 책의 번역을 완료했다.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도 적었지만,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시카고 시내의 로스쿨 서점에서였다.
아내의 시카고 학회 발표에 따라갔던 여행이었다. 아내가 발표를 하는 동안, 나는 혼자 시카고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시내 로스쿨 서점을 발견하고 들어갔다가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 로스쿨 서점에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책들이 꽤 많아서, 아예 한 쪽에 따로 모여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책들이 쓰이고, 읽히고, 팔리고,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룰 정도라는 것은 상당히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나라는 왜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느냐, 라고 자학할 것은 전혀 아니고, 다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부'와 '자유의 수준'이 부럽다는 그 뿐이다. 수정헌법 제1조를 그들의 아이덴티티이자 브랜드로서 인식하며 그에 관해 계속 집착하고 탐구하고 연구하고 되새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샀고, 또 다른 더 살 책이 없을까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나왔다. 아내의 학회 발표가 끝났기 때문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 이동해야 했다.
그 워싱턴 포스트 건물이 있는 곳 근처에 커피숍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앉아서 이 책이 정말 재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아내는, 귀국하면 이 책을 번역해 보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친한 친구가 출판사 이사님을 하고 있으니,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볼 만 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번역 과제를 여러 차례 하면서, 번역이라는 작업의 어려움을 알았을 뿐 아니라, 내 스스로가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 내 스스로가 얼마가 게으르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며 꾸준함이 부족한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내가 이 번역 작업을 하게 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후회가 가득할지 훤히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이 정말 재밌는 것은 사실이고, 누군가가 이 책을 번역해 주었으면 좋겠는 것도 진심이었기에, 그래서 일단은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귀국을 하고 나서 아내는 정말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출판사 이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로 번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온 것이다. (나는 내게는 부족한 추진력과 네트워킹 능력을 가진 아내를 존경한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출판사에서 미국의 사만사 버바스 교수님에게 연락 메일을 보내 판권을 사왔다고 하더나, 또 며칠 뒤에는 번역 계약서를 만들어 가지고 왔고, 며칠 뒤에는 번역 일정을 수립해 왔다.
나는 로펌을 한 5년 다니면서 아주 못되어 먹은 습관이 늘었다. 그것은 어떤 과업에든 자기가 들여야 하는 공력을 최소화하고, 자기가 들이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남에게 일을 떠넘기려는 경향이다. 나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번역의 시작부터 끝 단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식으로 엄살을 떨면서, 나의 업무 분량을 야금야금 줄였다. (아내가 시작부터 끝까지 고생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내가 실제로 한 일은 책의 후반부의 초벌 번역, 책의 후반부의 2차례 정도의 교열,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 전체에 대한 1차례 교열, 책에 사용된 법률용어의 감수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외의 나머지 모든 일, 책의 출간에 관련된 교섭과 협상, 책의 전반부의 초벌 번역, 책 전체의 최초 교열 및 최종 교열 등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했다. 사실상 아내가 '주'이고, 나는 '부'가 되어서 한 번역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번역에서 아내는 번역하는 일을 담당했고, 나는 스트레스 받아 하며 호들갑 떨고 지랄 떠는 일을 담당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찌 어찌 번역이 끝났고, 출판도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어려운 출판 시장/생태계에서 번역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이 책을 파는 일이 남았다.
나는 좀 과하게 부끄러움이 많고, 비밀주의인 편이라서, 이 책을 번역하고도, 이 책을 홍보하는 것은 좀 망설여졌고, 여전히 많이 망설이고 있다.
그러던 중에 은사께서 주신 전화를 받았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참으로 귀중한 일을 했다는 격려의 말씀이었다. 나는 호들갑에 주책이 많은 편이어서, 혹시 번역에 오류가 있을까봐 걱정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은사께서는 그래도 책을 많이 알리고 책이 많이 팔려야 출판사가 잘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주셨다.
이것은 아주 100% 맞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망신을 당하더라도, 그건 모르겠고, 그와 무관하게 이 책은 잘 팔려야 한다. 관계자들이 잘 되어야 하고, 출판사가 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출판 시장은 정말 많이 어렵다. 그리고 점점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출판 시장이 더욱 잘 되어야 하고, 이것은 우리 공동체, 우리 시민사회의 "복리"와 직결된다는 점을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출판사 이사님은 내가 한 번도 뵌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 이사님이라고는 하지만, 내 아내의 친구이고, 내 아내와 또래다. 결국 청년 사업가다. 그럼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출판사를 운영해 오고 있었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번역과 출판에 나선 것은, 내 아내와 내 아내의 안목을 신뢰하는 마음이 하나였을 것이고, 이사님 역시 이 책이 갖는 시의성과 가치를 알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으로, 이 책이 번역되는 도중에 이사님은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잘 출판되어 나오도록 마지막까지 각고의 신경을 써 주고 있으시다)
이사님의 이러한 결정, 선택, 리스크 테이킹이 옳았고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널리 알려져야 하고, 잘 팔려야만 한다. 이사님은 성공사례가 되어야 하고, 이사님이 선택한 이 책의 번역 역시 성공 사례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내가 번역한 부분에 오류가 넘쳐나고, 그래서 어느 높으신 전문가께서 내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런 식으로 번역할 것이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고 꾸짖어 주시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알게 무엇이냐? 내가 무슨 망신을 당하건 모르겠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건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출판사는 잘 되어야 하고, 이사님은 잘 되어야 한다. 이 책이 알려져야 하고, 잘 팔려야 한다. 그래서 이사님의 선택이 시장의 관점에서도 그렇게까지 틀리지 않았다고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출판 시장에서 제2, 제3의 '뉴욕타임스 죽이기'가 출판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야 우리 출판 시장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어 팔리는 미국 학문/출판 시장의 수준을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누군가가 제2, 제3의 뉴욕타임스 죽이기를 출판하려고 할 때, 제2, 제3의 출판사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설 것이 아닌가?
수면 상태에 있던 브런치를 재개한 것도, 이 책 '뉴욕타임스 죽이기'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팔아 보려는 시도중 하나다. 브런치의 독자들 중에는 글을 읽고 쓰는 실천에 가치를 부여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니, 이 책의 잠재적 독자가 되어 줄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다행히 이 책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 한겨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더팩트, 데일리안과 같은 언론사들에서 서평 기사를 실어 주셨다. 이 책이 더욱 많이 팔리기를 바라고, 오래 오래 팔리기를 바란다.
나의 2025년의 주요 과업 중 하나는 이 책을 잘 번역하는 것이었다. 2026년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이 책을 잘 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