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 초창기,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미합중국의 헌법과 수정헌법을 작성하는 등 미국 건국에 참여한 인물들을 미국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라고 부르며 기념합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입니다.
그 외에 벤자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으로 유명한), 존 핸콕과 같은 인물들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입니다.
그런데 건국의 아버지들도 두 당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당쟁을 벌였습니다. 연방당(Federalist)과 민주공화당(Democratic Republican)입니다.
신생 독립 정치 체제 미합중국에 대해서 연방당과 민주공화당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미합중국이 주들(States)의 연합체(Unity)로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연방당은 미합중국이 연방(Federation)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은 미합중국이 각 주들(States)의 모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연방당은 미합중국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가 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은 각 주(States)의 정부들의 자치가 중요하다고 맞섭니다.
연방당은 강한 중앙정부, 통일된 중앙은행,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강한 군대, 중앙정부를 운영하기 위한 높은 세금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은 연방적인 요소들을 최소화하기 원합니다.
연방당은 영국을 미국의 롤모델로 삼습니다. 연방주의자 중에는 경향적으로 친영파가 많습니다. 신생국가 미국은 비록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영국을 모델로 삼아 영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민주공화당은 프랑스를 미국의 롤모델로 삼습니다. 민주공화주의자 중에는 경향적으로 친프랑스파가 많습니다. 신생국가 미국은 영국과는 결별하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나라 프랑스를 롤모델로 삼아 프랑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독립 직후 한국의 정치 지형의 분열상과도 유사합니다. 우리나라도 건국한 직후, 비록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일본을 모델로 삼아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노선이 있었고, 모든 일본적인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노선이 있었습니다. 일본과 수교하고 일본과 다시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노선이 있었고, 그에 반대하는 노선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노선 차이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고,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연방당의 대표적인 인물은 알렉산더 해밀턴, 존 애덤스 같은 인물들입니다. 민주공화주의자의 대표는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제퍼슨을 따르는 민주공화주의자들을 제퍼슨주의자(Jeffersonian)라고 하기도 합니다.
연방당과 민주공화당은 단순히 견해 차에 머물지 않고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나아갑니다.
최근 미국 정치의 특징을 정치적 양극화로 꼽으며 정치적 양극화의 폐해가 심하다는 진단이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을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의 결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한국 정치의 '병명'도 최근까지 정치적 양극화로 진단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정치적 양극화는 이명박 정부의 친노 탄압으로 본격화 되고, 문재인 대 박근혜 선거에서 뚜렷해 졌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양 진영의 균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도 상호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었으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거부권 정국을 거쳐 계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양극화로 설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건국 초창기의 정치적 양극화도 현대 미국 정치나 한국 정치에 못지 않게 치열한 사생결단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선동법(Sedition Act)입니다.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재임기 미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돌입합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립 전쟁을 했을 때 군사를 보내고 돈을 대출해 준 우방국이 프랑스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에 대출을 상환하지 않기로 하였고 결국 프랑스와 충돌하게 됩니다.
민주공화주의자들과 제퍼슨주의자들 입장에서 존 애덤스는 엄청난 삽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왜 우리의 우방국이자, 우리의 롤모델이자, 미국 독립에 '재조지은'을 베풀어준,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인 프랑스와 전쟁을? 그래서 민주공화당은 격렬하게 반발합니다.
그러자 존 애덤스와 연방당원들은 외국및 및 선동법(Alien and Sedition Acts)이라고 하는 법안 패키지를 통과시킵니다. 명분은 주적인 프랑스를 이롭게 하는 이들을 처단한다는 것이고, 실질은 정적인 민주공화주의자들을 탄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인 및 선동법 중 외국인 법안들은 정부로 하여금 필요에 따라 외국인들을 추방하거나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었고(그 중 외국인 적대법은 오늘날까지도 효력이 남아 있어서 트럼프가 이를 활용해 베네수엘라 인들을 추방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선동법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하여 허위의 선동적 발언을 하는 이들에 대해 징역 및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이었습니다.
실제로 선동법은 민주공화주의자들에게 주로 적용되어, 수많은 제퍼슨주의자들이 기소당하고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습니다.
제퍼슨과 매디슨을 비롯한 민주공화주의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선동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합니다. 제퍼슨은 켄터키 주 의회 결의안을 작성하고, 매디슨은 버지니아 주 의회 결의안을 작성해, 두 주가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두 결의안 모두 선동법은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에 반하여 위헌이고, 각 주는 선동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켄터키 주 결의안은 주 의회들이 연방 하원이 제정한 선동법의 효력을 '무효화'(nullify)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버지니아 주 결의안은 각 주에서 연방 하원이 제정한 선동법이 집행되는 것에 '개입'(interpose)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선동법은 1801년 만료되어 소멸합니다. 선동법은 처음부터 1801년을 시한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 시한은 연장되지 않습니다. 18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이 당선되고, 제퍼슨은 제3대 대통령이 되면서, 선동법을 적용받고 처벌받은 사람들을 전부 사면하고, 미국 하원이 정부 예산으로 선동법으로 처벌받은 사람에게 돈으로 보상하도록 합니다. 이로써 선동법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선동법이 과연 정말로 위헌이었는지에 관해 연방 차원의 공식적인 선언은 없었습니다. 연방의회가 선동법을 폐지했던 것도 아니고, 연방대법원에서 선동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던 것도 아닙니다. (사실 아직 연방대법원의 헌법재판 제도 자체가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1803년 존 마셜 연방대법원장이 헌법재판 제도를 발명하기까지는 아직 헌법재판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후 연방대법원의 여러 대법관들은 선동법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별개의견이나 방론으로 제시하거나, 선동법이 위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논리를 개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은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에서 1798년 선동법이 위헌이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합니다.
<뉴욕타임스 죽이기>에서는 선동법의 간략한 역사 그리고 선동법이 어떻게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의 쟁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