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노동의 시장 가치

<뉴욕타임스 죽이기> 번역 후기 (2)

by 뉴욕타임스 살리기

<뉴욕타임스 죽이기>를 번역하면서 번역 노동의 시장 가치에 관한 생각을 종종 했다.


번역 노동은 고되다.


그러나 번역 노동에 내가 부여하는 주관적 심리적 가치에 비해 시장이 부여하는 가치는 훨씬 적다.


번역 노동의 사회적 효용을 생각하면 그에 비해 시장 가치가 낮다.


반면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는 활동에 훨씬 높은 시장 가치가 부여 되기도 한다. 도대체 세상 누구에게 유익한지도 모르겠는 활동에 시장은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가치란, 또한 가격이란 평생 미스테리다.


(당연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약의 사회적 해악은 법이 선언하지만, 마약은 고가에 팔린다.)


사태에 대한 설명은 간단 명료하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과잉이니까. 끝.


경제학적 설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따금 느꼈던 감정을 토로하며 한탄을 하려는 것이다.


번역한 책의 가격은 25,000원이 책정되었다. 시장가격으로서 적정하고 정당하다. 이 책보다 더 훌륭하면서 더 저렴한 책도 아주 많다. 매절 계약을 체결했고, 대금으로 [*]원을 입금받았다. 출판사는 통상적인 가격에 대비해 우리의 번역 노동의 대가를 후하게 지급했다고 생각한다. 가격 산정에 있어서 출판사는 아무런 도덕적, 법적 잘못이 없고, 오히려 출판 시장, 번역 시장에 큰 기여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희생까지 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다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시장 자체가 -나의 주관적 심리적 가치 평가에 비해- 너무 번역 노동의 시장 가치를 낮게 잡고 있다. 그래서 불만이다. 설명은 간단하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과잉이다. 그러나 설명이 간단하다고 심정도 간단해야 하나. 설명이 간단해도 심정은 복잡하다.


아무래도 이 사회는 번역 노동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공급이라는 현실과 수요라는 현실이 만났을 뿐이다. 아쉬운 부분은 수요다. 번역 저작물에 대한 수요가 일반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카프카에 3000원이, 베케트에 3000원이 아깝다.


아버지 말로는,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석 잔을 아끼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데, 책 값은 비싸다고 하면서, 아메리카노는 하루에 석 잔 씩 잘도 마신다. 기이한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나도 오늘 아메리카노 한 잔 어치 값의 차를 석 잔을 마셨지만, 이번 달에는 책을 아직 한 권도 사지 않았다.


상품에 부여하는 가치란, 상품에서 느끼는 효용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의 가치 체계, 효용 함수도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대다수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치를 높게 부여하는 활동이나 상품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낮은 가치를 부여할 때, 심정 복잡하며 당혹스럽다.


우리 출판 시장이 훨씬 더 규모가 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번역 노동의 결과물인데도, 책값은 훨씬 더 저렴하면서, 시장이 번역자의 번역 노동에 지불하는 대가는 훨씬 더 컸을 수 있다. 영어권 시장이었다면 동일한 정도의 번역 노동으로도 십 만 권이 팔릴 수 있는 책이, 한국어권 시장이기에 만 권이 팔리고 만다. 번역 노동의 대가가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어권 시장의 수요가 특별히 낮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규모의 경제가 문제다. 우리 출판 시장의 규모가 훨씬 더 컸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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