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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May 08. 2020

미니멀 혹은 제로웨이스트와 그 시절 우리 엄마

엄마는 역시 옳다. 이미 오래전 미니멀한,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살았으니.

코로나로 때아닌 집콕을 해야만 했던 봄.

놀랄 만큼 늘어지 시간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게 허한 마음을

클릭 몇 번이면 도착하는

택배로 채우던 나날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 쥔 옹졸한 물건과

그 물건만한-대개는 물건보다 커다란-

택배 박스와

처치 곤란한 겹겹의 비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개만 넣으면 쓰레기 봉지가 가득 차버리는

아이스팩을 보며


그간 마음속에 어설프게 담고 있던,

분리수거만 잘하면 문제없을 거라는

덮어놓고 외면하던 불편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책을 꺼냈다.


심플하게 산다-도미니크 로로

미니멀라이프.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는 삶.

결국 오래도록 쓸만한

볼 때마다 기분 좋은 것들로 가득한 삶.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고 있는 지경이던 옷방과

더 이상 꽂을 곳이 없어 몇 겹으로 쌓여있던

책장을 정리했다.

있는지도 몰랐던 옷과 책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라면상자 12개 분량.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끌고 가는 수고를 덮어주는

20만 원 남짓한 소득공제보다

나도 드디어 지구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기쁨이 컸다.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비 존슨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완벽한 환경보호자 한 명보다

어설픈-그러나 노력하는- 환경옹호자 백 명이 되자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보자 했다.


마트에서는 도저히 포장 없는 물건을 살 수 없어

재래시장으로 갔다.

샴푸와 설거지 세제 대신 샴푸 비누, 설거지 비누를 써야겠다 싶었지만

샴푸바와 설거지바라는 친환경 명목의 비누는 너무 비쌌다.

비누 만들기를 알아보았다.

제대로 만들자면 방독면과 보안경, 장갑이 필수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다.

소프넛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혼집을 꾸리며 들여놓았던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꺼냈다.


인터넷 세상에서 동지를 만났다.


제로웨이스트 커뮤니티들.

소소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각자의 실천에 용기를 얻었다.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서로 목소리를 합쳐 사회에 의견을 낼 수도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나도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가끔 인터넷을 사용하는 자체도

환경에 해가 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가슴이 불편해지고,

요구르트 병에서 비닐을 때다가

손톱이 뒤집어져 화가 나기도 하고,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오면서도

커피의 생산부터 내손에 오기까지 발생한

탄소발자국에 마음이 불편한

미니멀라이프 초보자.


"비닐봉지 안 주셔도 돼요"를

다급하게 외치고,

좀 더 재활용하기 쉬운 제품을 찾아 헤매고,

중고거래에 새로이 눈을 떠

버릴 수 없는 물욕을 다시 채우는

제로웨이스트 초심자.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바꿔야 할 것도 많다.


다행히도

미니멀라이프, 혹은 제로웨이스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바로 그 시절 엄마에게 답이 있다.


생수 대신 델몬트 유리병에 보리차를 끓이고

작은 옷은 동생에게

그래도 못 입는 옷은 걸레로 쓰던 엄마처럼,

물티슈가 뭔지도 모르던 바로 그 시절처럼.


물건을 버리기 전에 이리저리 또 다른 쓰임새를 궁리하는,

물건의 새활용이 일상인

살림에서의 무궁무진한 창조성을 발휘하는 우리 엄마.


언젠가는 구질구질해 보이기만 했던

마트에서 받아온 비닐을 몇 번이고 재사용하고

내손에 장아찌 병 한가득 안겨주며

택배 상자에서 잘 정리해둔 뽁뽁이를 꺼내

병에 휘휘 둘러주는,

뼛속까지 제로웨이스트인 우리 엄마.


역시 엄마는 다 알고 있다.

미니멀라이프와 제로웨이스트를 내다보고

친환경을 몸소 실천하던 엄마는

아직까지도 내게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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