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학력주의다. 열린 사회가 되어 모두에게 개방된 정보로 누구나 쉽게 정보를 취하고 다각화 된 성공의 방식으로 학력주의의 오만이 조금은 덜 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학력주의 사회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2010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은 학력에 의한 차별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능력의 폭정(이 책의 원제다. ‘The Tyranny of Merit’)이다.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사람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건 대학 졸업장이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대입할 때 최초 학부 입학기록인 입시 성적으로 그 기준이 축소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적으로 측정되는 능력에 맞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자리와 사회적 존경이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대학 생활 내내 쌓는 스펙이나 성적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 성적으로 어떤 ‘간판’을 달았느냐가 능력을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된다.
한국에서는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공돌이 공순이라고 낮잡아 부르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닌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비속어 섞인 말로 조롱한다. 노동자 계층에 대한 멸시는 보편적이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부도덕하다면서 일반화 하기도 한다.
필자는 열아홉살 때부터 스물여섯살 때까지 7년간 3교대로 일했고 그 중 2년을 잠 줄여가며 사내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브랜드 디자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가서 침 흘리고 자더라도 학교에 갔다. 무언가 배우고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재밌었다. 어떤 어른을 교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생 신분은 더없이 소중했다. 누군가에겐 교수님이라는 호칭 자체가 부르기만 해도 과분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귀찮고 가기 싫은 학교의 지루한 어른일 뿐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모두에게 사다리가 있긴 하지만 단과 단의 사이가 같지는 않구나.”
학력주의에 발 맞추기 위해 몇년을 들여 올해 방통대 졸업을 앞두었다. 가고싶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내년에 진학할 대학원의 전공 과목을 살펴봤다. 글을 쓰며 생각한다. 왜 대학원에 가려고 했었지? 뭘 원하는 거지? 이게 맞는건가.
생각해보면 가수는 노래를 잘하면 되고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되고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면 된다. 누구도 가수한테 논문써서 석사 박사 되라고 하지 않는다. 석사 박사라고 해서 더 훌륭한 가수도 아니잖나. 돈내고 시간들이면 다 석사고 박사인것도 문제다. 신빙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진짜들은 석박사를 자랑하지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드러날 뿐이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와 기회의 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조건의 평등을 제시한다. 조건의 평등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복지를 통해 물질적 재화를 나눠받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시민들은 “사회적 인정과 명망을 얻고,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고 가치를 두는 일을 할 기회”를 원한다. 시민들은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출발은 우리가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겸손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사실 능력주의와 기회의 평등에 대한 대안이 구체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추상적이다. 이런 원칙을 현실 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앞으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쓰고 보니 더욱 선명해진다. 결론은 무리를 해서라도 대학원에 가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추상적인 대안을 구체화하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변하지않는 사회탓을 하며 나이만 먹어가고 한탄만 하며 살 바에 ‘학력 세탁’이라도 하는 것이 이 시대와 사회에 발맞춰 사는 현명함이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 하나를 바꾸는 것이 도리어 능동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콤플렉스를 극복해야지.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야지. 결정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을 몇몇만 떠올려 봐도 모두 학벌이 좋으시네.
에휴 학력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