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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당 김소영 Mar 06. 2023

참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참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불편해도 편한 척, 싫어도 좋은 척. 진심이 아닌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지만 으레 ‘척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던 시절이다. 하지만 참는 사람을 아름답고 갸륵하게 봐주는 것은 그야말로 쌍팔년도 클리셰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사라져야할 관습이다. 참고 넘긴 문제들은 결국 다른 곳에서 엉뚱하게 삐져나오게 되어있다. 여기서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부당함에 대한 것들이다. 부당한 것들은 불편하다. 불편함은 지속될수록 부정적 감정으로 발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꺼내기조차 어려운 큰 문제가 되어버린다. 별 것 아니라 여겼던 일로 많은 사람들이 소속을 떠나거나 관계를 포기한다. 대표 사례로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퇴사와 이혼이 있다.

MZ세대 직장인들의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 비율은 30%가 넘는다. 작년 11월, 잡코리아가 2030 직장인 34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2%가 입사 3년 미만에 퇴사했다고 답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도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내에서 관계나 상황을 개선할 수 없을거라 믿기 때문에 벌어진다. 부당함에 대한 불편함을 말했을 때 대화로 개선할 수 있고 해결가능한 관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모두 관념적으로는 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렵다. 이야기를 꺼낼 수 없으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당연히 해결되지 않는다. 기성 세대들은 견디면서 버티듯 직장생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요즘 세대들에게는 그런 관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신입이 갑자기 출근하지 않아요’

직장인 52.1%는 퇴사하는 진짜 이유를 숨긴다고 한다. 차마 밝힐 수 없는 퇴사 사유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상사·동료와의 갈등이다. 일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이유지만 핵심 원인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그것을 숨긴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회사의 의무이자 사장의 역량이다. 힘들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하면 사원 입장에서도 시간이나 노력, 재취업 비용이 들어 손해지만 회사도 마찬가지다. 채용·교육 비용은 회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원들이 꺼내는 문제들을 관습이란 이름 아래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해결한다면 조직을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월간 이혼건수는 7198건, 연간 10만 1673건이고 혼인건수는 월간 1만 5795건, 연간 19만 2507건이다. 결혼 커플 중 반은 이혼하는 것이다. 재판상 대표 이혼사유는 성격 차이, 배우자나 직계존속의 부정한 행위, 부당한 대우다.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겠지만 대부분 혼인 후 관습, 집안 행사, 생활 자금 등 현실적 문제들에 직면한다. 하지만 대부분 초기에 참고 넘기거나 가볍게 여기고 회피한다. 시간이 지나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에 성숙한 대화로 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부당을 참지 않는 대화가 보편화 되면 터무니 없이 높은 이혼율을 조금은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참으면 복이 아니라 병이 온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불편함이다. 이런걸 굳이 얘기해서 서운하거나 불편하게 해야할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부르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절대 사소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 반드시 중대한 문제로 돌아온다. 썩은 이가 생겼을 때 치과에 일찍 가지 않으면 충치 치료로 쉽게 끝날 일이 임플란트까지 가게 된다. 치료기간도 길어지고 비용도 몇 배 늘어난다. 모든 문제의 사소함을 여기에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초기에 불편함을 알아챘을 때, 사소하다 여길 때 반드시 꺼내어 해결해야 한다. 참고 넘기는 식으로 방치한 대가로 급증한 퇴사와 이혼은 사회 문제가 됐고 재고용·재취업·재혼 등의 형태로 우리는 이미 비용을 치르고 있다.

당연히 방식의 고민은 필요하다. 불편한 것을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요령, 같은 말도 부드럽게 전할 수 있는 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서로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식. 하지만 도저히 부드럽게 말 할 수 없더라도 용기내어 문제를 끄집어 내야 한다. 썩은 이 치료를 위해 결국 치과를 찾아야 하듯이. 덮어두고 시간을 끄는 것은 문제를 키울 뿐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 않는다.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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