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배려는 어떻게 나에게 돌아왔는가?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만난 친구가 있었다.
부산 보다 아래에 있는 섬마을에서 부산에 있는 대학으로 와서 언니랑 둘이서 작은 단칸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은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너무 궁금해서 가보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그 친구집에 입성했다. 친구는 아마도 초라한 살림살이와 보여줄 것도 없는 자신의 터전을 보여주기가 민망했는지.."집이 집이지 뭐.. 그냥 이게 다야"라고 말했다.
그 집이 누추한 지 어쩐 지는 기억에 없고 방안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던 그 시간이 잊을 수 없이 가끔 힘겨운 순간에 떠오르곤 했었다.
학교를 다니며 점심시간이면 늘 그 친구는 배가 안 고프다는 둥 오늘은 돈이 없다는 둥 하면서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이 잘 나가고 있던 터라 나는 맘껏 있는 대로 돈을 쓸 수 있었다.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호의로 그 친구에게 늘 밥을 사주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그 친구의 밥값은 늘 내가 지불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언갈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고맙다고 커피 한 잔은 살 줄 알았는데, 어린 마음이라 그랬는지 그럴 생각은 없었는지. 어느 날에 문득 쪽지를 한 장 주면서 "난 이제 네 친구 아니야"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쪽지 내용을 읽어봤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줄 기억나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너랑 너무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상에 살고 있고.. 너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랑 어울리는? 나랑 어울리려면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난 그 친구에게 내 마음을 하나도 빠짐없이 표현하고 그 친구를 배려했는데 돌아온 건 그 친구의 박살 난 자존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늘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친구이기에 밥 정도는 선의로 베풀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생각 없이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었고 본인은 아니다 보니.. 나랑 어울리는 친구는 아니구나..라고 생각 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십 년 정도 더 지난 후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있는 대로 퍼부었다.
너 어떻게 그때 그런 말만 하고 인연을 딱 끊어버렸냐고.. 넌 이제 진짜 내 친구 아니다. 넌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전화로 이러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기도 귀찮았을 뿐만 아니라. 그때는 그 친구가 보고 싶지 않았다. 할 말은 이미 전화로 다 퍼부었기 때문에 난 미련 따윈 남아있지 않았고 더 듣고 싶은 변명도 없었다.
싸구려 분식집에서 파는 라면은 삼천 원이면 되는데. 그 친구는 늘 비싼 오징어덮밥을 시켜 먹고 난 생각 없이 늘 그 친구의 밥값을 내가 먹은 것과 같이 계산을 해줬다.
그리곤 뒤에서 나지막이 "마안해"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야 뭐 내줄 수도 있지.. 부담 갖지 마"라고 얘기했었다.
그런 악의 없는 친절에 내가 돌려받은 건 그 친구의 배신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참 소모적인, 일이구나. 내 시간, 내 돈, 내 믿음, 내 마음을 쏟았는데 돌아오는 게 겨우, 고작, 그런 것이면...
필요한 만큼만 배려하고 나머지는 내 몫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도 배신엔딩은 아니지 않나?
오늘 문득 든 생각에 하루가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