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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율 Oct 21. 2022

그다지 아프지 않은 이별

추억이 없는 사람과의 이별이란


올해 6월에 비가 오던 날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은 회사에서 등산을 가는 날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급하게 산을 내려와서 젖은 옷을 갈아입으려 집으로 왔다.

그날 마침 친정엄마가 집에 와 있었다.

남편은 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친정엄마가

 "뭐,, 언제고 한 번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데 ㅇ서방 아버지 잘 보내드려라"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남편의 오열이 시작되었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진 거였다,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남편의 등을 쓸어내리며 잘 갔다 오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아내의 암 선고와 수술에도 남처럼 병실에 앉아있던 남편이 그래도 아버지라고 눈물이 터진걸 보니 남편은 역시 부모의 아들이지, 나의 보호자이며, 아이들의 아빠는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드는 생각은 나의 이기심일까? 아니면 그동안 시부모님의 아들이기만 했던 남편을 향한 분노일까?




하여튼 나는 시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고 싶지가 않았다

미신임을 알지만, 아픈 사람은 장례식엔 가지 않는 거라고 해서.. 친정엄마가 극구 말리기도 했고.



그렇다고 집에 있는 시간이 편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하루는 힘들었는데 다음날은 괜찮았다.

왜 괜찮은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편하지 않았던 하루의 마음은 시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는 게 어찌 보면 며느리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을 들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시아버지 관련된 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하나도 없다. 며느리 도리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들의 마음에 차지 않았을 뿐.



추억할 것들이 없으니 그의 죽음도  가지가 잘리는 고통이나 슬픔까진 아니었다. 만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슬픈 감정은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마음이 더 슬픈 것이긴 한데..



기억나는 게 있긴 하다.

결혼하고 시아버지의 첫 생신, 나름 매우, 고민해서 모직으로 된 네이비색의 재킷을 선물로 사서 들고 갔다.

가격대도 좀 있었지만 그래도 첫 생신이니 나름 마음을 많이 쓴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시어머님이 시아버지께 우리가 사 온 재킷이라며 입어보라고 권했는데, 시아버지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이런 거 안 입는다" 하신다. 한차례의 입씨름이 오가다가  입지 않으려 하시는 시아버지께 억지로 억지로 시어머니가 입으라 하니,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이내 홧김에 벗어서 집어던지셨는데 그 재킷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재킷에 있는 지퍼에 얼굴을 맞아서 생채기가 났다.




시어머닌 어쩔 줄 몰라하시고, 손위 형님은 웃고 있었다.

아직도 그 웃음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고소하다'라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너무 주관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형님의 소행을 보면 그냥 나의 싸한 느낌이 맞을 거란 생각이 든다.





부모 자식 간의 이별의 순간 언제가 될진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죽음의 순간을 생각해보며 수술실에 들어갈 때 내 삶은 유한하며,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근데 아프지 않은 이별도 있는 것 같다, 함께 한 시간 속에서  그 어떤 즐거운 추억도 기억도 없는 이별은 그냥 한 인간의 나고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식에게 부모가 사라져도 그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과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 난 어떤 엄마이고 어떤 부모인가를 돌이켜보게 한다.


그래서 조금은 아픈 이별이어도 괜찮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좋은 추억들을, 좋은 기억들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근데 참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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