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조합

2018, 네덜란드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by 모이

어느 덧 10월,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쭈욱 쌀쌀해왔지만 10월이 되자마자 본격 겨울의 초입을 알리듯,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

차가운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시기는 고3-재수 때의 수험생 시절이다. 찬바람이 불면서 이제 정말 수능이 코앞이구나 를 몸도 마음도 직감하던 그 시기!


이번 가을여행으로 떠난 스위스에서는, 찬 공기를 킁킁대며 수험생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그 때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열어보았다.

그 중, 유독 19살의 내가 잘 떠오르던 노래가 두 곡이 있었는데, 아이유의 <무릎>과 <푸르던>이다. 무한 반복 재생을 하며 수험생이었던 나와, 지금 스위스 배낭 여행 중인 내 자신이 차곡차곡 쌓여 떠오르게 되었다.



아이유의 <푸르던> 을 들으며 지난 몇 년 간의 내 자신을 주욱 돌이켜 보았다. 수험생 시절을 지나 대학원서를 요리조리 고민하여 쓰고, 중문과에 입학을 하였고, 대학생이 된 것을 만끽하며 동시에 여러 경험과 고뇌를 거쳐, 지금은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을 와 있는! 베이비 성인으로서의 근 몇 년간, 각 위치에서의 내 자신을 떠올려 보았다.

베이비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나의 "선택의 기준"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선택을 한 후에는,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 상황에서의 좋은 결과, 그게 아니라면 좋은 경험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방향을 선택함에 있어서, 사실 다른 기준을 배제하고 100%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고, 내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동아리를 고민하고 등등..

어릴 때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교환학생 경험을 선택할 때는, 이번에야 말로 별다른 기준없이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중국어를 전공하였기에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것이라는 주위의 (나름의 근거있는) 기대를 깨고 나는 네덜란드행을 결심했다. 그래서 나의 네덜란드 교환학생 시절은 참 소중하다. 네덜란드로 떠나 온 결정은 내가 내린 인생 속 결정 중 다른 것보다 내가 원하는가? 만 고민하여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베른을 여행하던 중, 문득 나를 이루는 것들의 '조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 성적, 대외활동 등 실력이나 수치로 보았을 때 각각의 요소는 개인마다 차이를 보인다. 특히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는 많은 것이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교하는 시각이 생기고, 따라서 각 요소에서의 나의 위치를 점찍어보며 그 요소에 침몰 혹은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지난 몇 년을 떠올려보면, 매 시기마다 내가 초점을 맞추었던 요소가 변해가면서 그 요소 속에서 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 많았다. 물론 그 덕에 성장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모든 요소에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베른에서 홀로 뚜벅이가 되어 여기저기를 거닐고, 낯선 이들과 대화도 하면서 생각이 말랑해져서 인지, 갑자기 각 요소들의 조합을 가진 건 나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합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일 뿐, 조합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나를 근시안적으로 만들어 다른 요소를 보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이룰 무언가가 아니거나, 딱 그 정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요소들에 힘주는 정도의 선택권은 적어도 내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이루는 조합을 떠올리며, 그 조합의 강약을 조절함은 인생의 방향키를 내가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방향키를 저쪽으로 돌리고 싶다면, 나의 노력과 시간과 자원을 쏟아 그 요소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일단 그 방향으로 몇 걸음 가보아야 내 자신에게 그 분야를 요리조리 살펴볼 기회도, 중간에 만나는 문제를 해결할 기회도, 얼마만큼을 투자하여 이 요소를 나의 조합 대열에 합류시킬지도 결정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과 인생의 스케일은 다르지만, 여행을 하면서 때로는 너무 재고 따지지 말고, 이게 나의 요소인가를 느끼기 위해 일단 해보기!가 좋은 선택임을 느끼고 있다.


"미래를 가보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들을 행복의 원료로 살아갈 것이 그려지기도 한다. 지금의 순간이 그립고 되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지금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기 보다는, 그 좋은 순간들을 마음에 품고 그 기억들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가나는 원동력으로 간직하고 싶다" - 스위스 그린델발트에서 쓴 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