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아들과 키작은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이 같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같을 거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느끼는 세상과 엄청난 이질감을 갖고있다. 아들은 흡입 공기부터 다르지 않은가?
나는 160이 안 되고아들은 180이 훌쩍 넘는다 그와 함께 걸으면 머리하나 이상을 더 얹어야 공평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가 보는 거리감각은 매우 다른 것이다. 어디 거리뿐 이겠는가. 공기도 다르고..
코가 예민한 나는 자주 냄새에 대한 말을 하는 편인데 얘는 공감을 못하는 것이다. 하수구가 가까운 거리의 내가 느끼는 냄새가 같을 리가 없다.
거리감 역시 대단한 차이를 갖는 다. 이제야 그 거리감을 인지하면서 아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들은 초보운전자 주제에 자꾸 차를 바짝 붙여 세웠다. 너무 가까이 세운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듣는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거리감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해서 고개를 빼서 키를 늘려 아들의 눈높이에서 차의 본네트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니까 아들이 보는 거리감과 내가 보는 거리감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한다지만... 나는 누구보다 곧고 정의롭고 바르다고 자부하지만, 이 왜곡현상을 뭐라 해야하나. 나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의 눈높이에도 왜곡된 시선을 갖고 있음을 순간 깨달았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작은 키로 보이는, 저 본네트 앞이 거리를 더 뛰우게 된다는 사실, 아,, 그러니까 이것도 키작은 설음.. 같은 것..
평생을 키작다고 서러웠는데, 운전대 앞에서도 서러울 줄이야..
오호,
내가 바라본 세상은 지층에 가깝고, 아들이 바라본 세상은 지층에서 멀었다.
내가 바라본 세상은 하수구 냄새가 잘 나고, 아들이 바라본 세상은 하수구 냄새에서 멀었다.
내가 바라본 세상은 앞차와의 간격이 넓고, 아들이 바라본 세상은 앞차와의 간격이 가까워도 안전했다.
그러니까 나의 잔소리는 기우였고
나의 거리는 아들에게는 의미없었고
한마디로 dung... 흑흑
사진 Mariakray-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