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김신영 시인

by 휘루 김신영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 유쾌한 아낙네들 거리에 쏟아져 있고

남 모르는 햇살을 간직한 채 미쳐 우는 바람은 아직도 내 곁에.

시계는 갔다 그저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흘러갔다

마음은 흘러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 나아 그를 만나 떠다니지 않을 곳에서 이 꽃들 걷어내고 싶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를 하나쯤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 비바람이 그칠는지

골목길에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거리에서」(『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1996)


화자가 자신의 수없이 전변 되는 안타까운 심경을 주위의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는 것은 목적 없이 방향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이다.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시계는 흘러갔다”라고 하듯이 시간조차 화자에게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만큼 화자는 무엇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한다.


무엇 때문에 화자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혼동 속에 빠져있는 것일까? 그 추리할 수 있는 근저는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과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로 연상되고 추리된다. 화자를 사랑하던 어떤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라고 한다. 시를 쓰게 된 발상의 근원에서 화자는 마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자는 “사랑이 찬란한 빛을 잃었듯 마음은 흘러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라며 자신을 향해 토로하듯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화자가 선택한 언어의 흐름에 젖다 보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가 왜 이 시에서 중요한 언어의 선택이 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화자의 안타까운 마음은 내면이 요동치고 그 흔들림이 진정되기를 기원하면서 가정하는 장면을 계속 예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과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에 이어 “아이들의 웃음으로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과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등 결국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그의 가정법은 결국 안타까운 대상에 대한 한탄이다.


따라서 자신이 제시한 수많은 가정법이 이루어진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하고 스스로를 황진이가 자신 때문에 죽음을 택한 청년과 비견하며 안돈 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희구하는 가정법은 실현되기 어려움을 반증하기도 한다. 화자가 고변하듯이 자신을 애모하다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생을 마감한 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화자의 시적 진술을 더욱 폭렬하게 했다고 하겠다.-이덕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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