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살 맛인 뭔지 그 맛의 궁금증에 빠져보라
삶이 고단할 때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산다는 건>을 부르곤 한다. 아마, 다른 도움 없이 가사를 암기해 2절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이 곡뿐일 것이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 산다는 건 참 좋은 거래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오늘도 한 잔 걸치셨네요/ 뜻대로 되는 일 없어/ 한숨이 나도 슬퍼 마세요/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었는지 누가 알아/ 살다 보면 나에게도 좋은 날이 온답니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 산다는 건 참 좋은 거래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옆집이 부러운가요/ 친구가 요즘 잘나가나요/ 남들은 다 좋아 보여 속상해도 슬퍼 마세요/ 사람마다 알고 보면 말못한 사연도 많아/ 인생이 별거 있나요/ 거기서 거기인 거지// 산다는 건 다 그런거래요/ 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세상일이란 알 수 없지만/ 산다는 건 그런 거래요/ 모두 다 내일도 힘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살다 보면 각자의 인생사를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부럽고 대단해 보이는 마음이 생겨서 일 것이다. 이를테면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강북의 한갓진 다세대주택에 사는 사람은, 사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더라도 비교의 품앗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여름날,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셔도 별다방 것과 백다방 것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별다방과 백다방의 차이는 그야말로 별과 사람(백)의 차이에 그친다. 별 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착한 가격에 큰 사이즈의 백다방은 저연비의 연료가 꽉 차있는 자동차로 생각하면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별다방의 플라스틱 컵이 분리 수거통에 던져질 때 나의 손에는 여전히 백다방의 시원한 컵이 들려져 있다. 보라, 승자가 누구인가!
언젠가 커피 전문 카페 ‘테라로사’의 대표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아침 빈속에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주는 것은 행복과 황홀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신선했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의 행복이라니. 그렇다. 커피는 커피 일뿐이다. 별다방이건 백다방이건, 또 테라로사이건 커피 한 잔의 행복은 차이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오히려 커피 한 모금 만큼 우리한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각자도생으로, 우리 스스로가 커피 한 모금의 행복 같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마음으로 행복을 찾는 것이야말로 ‘산다는 건’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곧 그것은, 아주 작은 크기일지라도 살맛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 산다는 건, 자기 비하의 굴레에 빠지는 경우를 만들곤 한다. 스스로를 평등함 아래에 두고는 정작 자신은 허덕이는 경우다. 강남의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의 차이는 밖에서 보는 차이일 뿐 집 안으로 들어가면 똑같은데도. 사랑하는 가족의 웃음소리는 아마, 다세대주택에서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행복에 도달하려는 목표에 욕심이 없고, 이러쿵저러쿵 갈등의 소용돌이가 덜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아닌가?
우리가 산다는 건 바로 ‘나로 사는 것’이다. 아프고 힘든 날도 나의 것이고, 술 한 잔 걸치는 것도 나의 삶이다. 옆집에 사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바라보아도 공허한 남이다. 팍팍한 세상에 살아가는 것도 ‘나’이고, 설령 탄탄대로의 길 위에 있어도 ‘나’이다. 세상의 일이란 알 수 없다는 것처럼 내일의 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고군분투의 목적을 정하고 살아가면, ‘산다는 건’은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또한 산다는 건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남들은 다 좋아 보이는 것은 ‘착시’에 가깝다. 좋아 보임 속에서 비교가 드러난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예쁜 낙엽을 줍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자신이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서 행복을 만들어내고, 기쁨을 생산해야 한다.
산다는 건, ‘왜 나만?’이라는 의구심을 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모르던 일들이 남들한테 일어났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경우를 접한다. 그래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사람마다 말 못할 사연이 많기만 하다.
세상은 한탄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산다는 건 한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탄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나오는 한숨과 절망의 약발이다. 누구의 삶이든 인생이란 거기서 거기다.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한탄은 불행의 원료가 되면서 행복의 연료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모두가 오늘도 내일도 힘을 내야 한다.
‘산다는 건’을 정리해보자. 살아가는 것에 불필요한 것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비교와 편견, 선입견과 부질없는 걱정, 허세와 치장, 질투와 시기, 무모한 집착과 무한한 패배감 같은.
SNS에서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 사고가 화제가 됐었다. 빵이 자기 앞에서 품절이 돼 기다려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갓구어 낸 빵을 먹을 수 있으니 더 잘 됐다’라는 발언을 많은 사람들이 인상 깊게 본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낙관의 과한 공급에 치우치지 않으면 삶의 건조함을 막아주는 비타민이다. 산다는 건, 삶 속에 긍정의 힘을 보태야 한다. 살다 보면 나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살맛 나게 하는 일들은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주초에 샀던 로또 한 장은 여전히 숫자에 동그라미 한 두 개만 그려질 뿐이다. 혼자 여행을 떠날 때 옆자리에 앉는 상대는 기대와 다르게 늘상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 만 보도록 만든다. 내 삶에 찾아오는 행운은 네잎 클로버를 찾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인생이 험한 구석으로 치우칠 때 ‘죽겠네’라고 빈번하게 말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주 듣는다. 살맛? 과연 살 맛인 뭔지 그 맛의 궁금증에 빠져보라. 궁금하면 뭐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결국 산다는 건, 살맛 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우리네 각자의 삶이 별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밤하늘에 숨겨져 있던 삶의 별들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주어진 시간에 한눈 팔지 않고 충실하다 보면, 시나브로 어둠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행여 별이 얼굴을 내밀어주지 않을 때면 홍진영의 노래 ‘산다는 건’을 불러 보자. 노래에 자신이 없으면 시처럼 읊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