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중에도 바깥에서 봄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부터였던가, 주말이면 거미줄에 걸린 듯 집안에만 서성댄다. 먹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밤새 정체됐던 뱃속의 이끼들 탓에 음식을 내려놓는다.
우리집 주말 식단은 유럽의 가난한 집안에 차려진 밥상 정도 된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나는, 한 움큼씩 집어 먹다고 포크를 버리고 집게를 잡는다.
아직까진 뜨거운 커피를 함께 한다. 원두가 만들어낸 커피향은 늘 그 조향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준다. 계절별 향도 다르다. 겨울 향이 닫혀있었다면 봄의 향은 햇살의 온기가 그대로 투척되어있는 느낌의 스멜이다.
새로운 메뉴는 환영받질 못한다. 집안의 음식에 파고든 점령 셰프는 이젠 유튜브다. 사과 위에 내려앉은 그릭요거트와 피너트 버터의 조합은 느끼함의 폭격이라 어쩔 수 없이 독점한다. 음식의 탄생은 책임감이 있어 비로소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엄마의 밥상 위 음식은 먹는자들의 책임감이었던 것과 사뭇 다른 점이다.
음식의 섭취는 냉장고에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코스트코산 새우가 떨어졌고, 올리브유가 빈병으로 분리될 처지에 있다. 먹는다건 여전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먹어야 사느니라, 가 아니라 벌어야 산다.
포크를 내려놓고 떠난 그들은 시나브로 숨쉴만한 빈자리를 만들어주었고, 나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잔반을 처리한다. 그래도 설거지는 식세기에 부탁할 수 있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와중에도 바깥에서 봄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